인터넷폰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해 처음 소개돼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인터넷폰이 연초부터 국내 통신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보통신 각 분야의 업체들이 저렴한 요금의 인터넷폰서비스를 앞세워 국제전화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정보통신부는 일정요건을 갖춘 업체들이 신고만을 통해 별정통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했다. 그 후 한달여에 걸쳐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ISP)는 물론이고 시스템통합(SI)업체, 대기업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적으로 사업추진을 발표하고 나섰다.
기업들이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는 별정통신사업은 설비보유 재판매, 설비미보유 재판매 및 구내통신사업 등 세가지. 이 가운데 인터넷폰서비스는 설비보유 재판매사업에 해당한다.
인터넷폰은 인터넷망을 통해 전화, 특히 국제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하자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인터넷폰은 PC와 PC를 연결, 국제간 음성통화를 실현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서로가 PC를 켜놓고 대기해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PC와 전화를 연결하는 그 다음 세대 인터넷폰 역시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내에서 별정통신사업으로 지정된 인터넷폰 서비스는 제 3세대로, 전화와 전화를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기존 국제전화와 같지만 인터넷망을 매체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인터넷폰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엇보다 국제전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국내 사업자들이 아직 서비스 이용요금을 책정하지 않았지만 대략 일반 국제전화보다 최대 50% 정도 저렴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차이는 회선교환과 패킷교환 비용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한국전산원의 97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일반 국제전화용 회선교환 비용은 데이터 킬로바이트(kB)당 15센트(미국 기준)인데 반해 인터넷폰용 패킷교환 비용은 4센트에 불과하다. 서비스업체마다 인터넷폰 비용 산정기준이 약간씩 달라 이용료가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반 국제전화보다 싸다는 것은 확실한 셈이다. 이에 더해 인터넷폰이 이미 구축된 인터넷망을 활용한다는 것도 저가형 국제전화서비스라는 이미지 구축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정도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아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국내 기업, 개인들에는 상당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꼭 IMF시대가 아니더라도 비용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기업들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인 것이다.
기존 국제전화사업자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국제전화사업자들은 인터넷폰이 국제전화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고객들의 이반(?)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세계 시장조사기관, 업체들의 발표자료만을 놓고 본다면 인터넷폰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미국 프로브리서치사는 인터넷전화의 활성화로 기존 국제전화사업자들의 매출이 97년부터 2001년까지 약 1백억달러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의 필립스태리피카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인터넷폰의 등장으로 가장 큰 피해는 미국 AT&T와 유럽의 도이치텔레콤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오는 2001년까지 독일의 온라인 가입자 1천3만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인터넷폰으로 돌아섬에 따라 도이치텔레콤은 약 1억7천3백만달러, 프랑스텔레콤은 9천4백만달러, 브리티시텔레콤은 1억5백만달러의 수입감소를 경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단지 외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국내업계의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인터넷폰이 안정적으로 사용자를 확보한 일반 국제전화에 일정부분의 시장을 내달라는 압박을 조만간 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통신 등 통신사업자들이 인터넷폰 흠집내기에 나선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인터넷폰의 영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게 인터넷폰 사업자들의 설명이다.
기존 국제전화사업자들의 인터넷폰에 대한 공격은 우선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인터넷폰이 최대장점으로 내세우는 「저가 서비스」 개념을 희석시키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국제전화 사업자들은 일반 국제전화도 할인시간대 적용과 각종 서비스제도를 통해 인터넷폰과 같은 정도의 이용요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폰의 통화품질 역시 공격대상이다. 패킷 형태로 전달되는 음성은 시간지연과 울림현상을 수반하며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전화를 걸 경우 통화가 끊기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국제전화는 대부분 사업목적이어서 안정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인터넷폰의 경우 이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통신전문가들은 인터넷폰 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IDC는 인터넷폰 세계시장이 99년말에는 5억6천만달러, 우리 돈으로 8천4백억원(달러당 1천5백원 기준)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용자 역시 96년 2백만명에서 99년에는 1천6백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컨설팅회사인 킬렌앤어소시에이츠 역시 전세계적으로 인터넷폰 시장이 지난해 7억4천1백만달러에서 2002년 6백3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수치는 국제전화서비스시장에서 인터넷폰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현재 0.2%에서 2002년 11%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AT&T, MCI, GTE 등 미국 장거리전화 사업자들과 지역전화 사업자들은 최근들어 인터넷폰 시장 진출을 부쩍 서두르고 있는 눈치다. 이들의 사업참여는 앉아서 시장을 뺏기느니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인터넷폰시장까지 뛰어들어 전체적인 시장점유율과 수익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AT&T는 지난해말 보컬텍과 공동으로 벤처기업 ITXC를 통해 인터넷폰 사업 추진에 본격 나섰다. MCI도 인터넷 네트워크업체인 넷프피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인터넷폰사업에 뛰어들 의사를 내비쳤다. 스프린트와 GTE도 인터넷폰서비스에 돌입할 예정이며 지역 전화사업자들의 경우 제 2의 인터넷망 부설에 적극 참여, 인터넷폰 사업을 늦어도 99년부터는 시행할 계획이다. 이밖에 미국 최대의 온라인서비스업체인 AOL은 이미 5천여명의 가입자에게 인터넷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케이블TV 업체인 텔레커뮤니케이션도 오는 99년부터 인터넷폰 시장에 뛰어들 움직임이다.
일본의 NTT와 KDD도 규제완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인터넷폰시장 진출을 선언했으며 도이치텔레콤의 경우 지난 97년 7월 인터넷폰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프랑스텔레콤도 97년 11월 기존 양방향 정보통신서비스 「미니텔」에서 인터넷폰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겼다.
국내의 인터넷폰 열기는 통신사업자 보다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ISP) 및 시스템통합(SI) 업체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통신, 데이콤, 온세통신 등 3개 국제전화사업자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보통신부에 인터넷폰 사업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현재 7개. 아이네트, 나래텔레콤, 한솔월드폰, 넥스텔레콤, 한국무역정보통신, 현대정보기술, 삼성SDS 등이다.
아이네트는 한, 미간 국제전화 요금을 분당 3백90원으로 책정하고 오는 3월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 나래텔레콤은 나래이동통신의 출자법인으로 한, 미간 전화요금을 4백50원으로 정하고 2월중 무역회사와 해외유학 자녀를 둔 가정 위주로 영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한솔PCS와 한솔텔레컴 등 한솔 계열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한솔월드폰은 4월부터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 위주로 서비스한다는 계획이나 요금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넥스텔레콤은 제일엔지니어링 계열사로 지난해 11월 한, 미간 시범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분당 요금을 3백30원으로 책정했다.
한국무역정보통신은 지난 8월 시범서비스를 개시한 후 꾸준하게 상용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무역협회 회원사 위주로 영업한다는 게 이 회사의 전략이다. SI업체인 삼성SDS와 현대정보기술은 모두 서비스 시기를 6월로 잡고 있으며 우선 그룹 계열사 및 해외지사 위주로 영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대부분 사업 초기 마케팅 대상을 기업체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자사의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업체나 그룹 계열사를 우선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개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폰서비스는 당분간 소규모 형태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미 사업신청을 마감한 7개 업체 외에도 인터넷폰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업체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선뜻 이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해 15개 업체 정도가 인터넷폰 사업을 벌일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로 뚜껑이 열린 결과 아직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업초기라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인터넷폰 사업을 직접 운영할 만한 역량과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주된 요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대규모 사업자의 경우 현재 기업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업확정을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통신, 데이콤, 온세통신 등 국제전화 사업자들은 일단 관망하는 눈치다. 이들 3개 사업자의 국제전화시장 고수전략은 대략 두가지로 한정된다. 정부에 대한 인터넷폰 규제 요구가 이미 폐기처분된 상태에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전화 요금을 조정, 인터넷폰에 대응하는 것과 외국 통신사업자처럼 인터넷폰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 요금을 최대 30%까지 인상한 최근의 흐름을 보면 가격인하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운 조치로 비쳐지고 있다. 인터넷폰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한국통신의 경우 적자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가 거의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통신은 내부적으로 인터넷폰사업을 재검토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세통신 역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데이콤만 인터넷폰서비스를 위해 대규모 용량의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터넷폰이 국제전화시장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것인지의 여부는 이들 업체들의 밀고당기는 싸움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당히 짧은 시간에 인터넷폰이 이처럼 기존 국제전화와 다툼을 벌일 정도로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 보다 훨씬 더 인터넷폰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일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