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45)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 있지 않던 요람일기 가운데 천권과 지권을 찾은 것이 바로 진기홍 옹이었다. 요람일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보통신에 관련된 중요한 유물 대부분을 발굴하였고 정보통신에 관한 역사인식과 애착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진기홍 옹은 늘 요람일기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아직 발굴하지 못한 인권에 대한 미련을 강하게 나타내곤 했다. 쓰여지긴 했지만 찾을 수 없는 것에 더욱 안타까움을 나타내곤 했다.

요람일기의 천권과 지권에 러일전쟁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면 인권에는 당시 우리나라의 통신권을 피탈하는데 앞장선 일본인들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고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 요람일기 인권이 있을 듯한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하던 진기홍 옹.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와 화재 현장이 우리나라 전기통신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라며 신속한 복구를 당부하던 진기홍 옹이었다.

찌릉- 짧게 경보음이 울렸다.

김지호 실장은 경보 모니터를 확인했다.

A3경보.

교환기와 일반가입자들의 호(乎)처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등급의 경보였다.

김지호 실장은 한쪽으로 쭉 늘어서 있는 각종 감시용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정상. 모든 시스템이 정상이었다.

시내전화는 물론, 시외전화, 국제전화의 통화량과 교환시스템의 부하율도 사고가 발생하기 전과 동일한 상태로 되어 있었다.

전국 각 교환기의 주변장치에 대한 고장도 확인했다.

아무런 장애없이 깨끗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무인으로 운용하던 곳에도 비상근무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장을 즉시 처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절체작업도 마찬가지. 지금도 화재가 발생했던 광화문 네거리 맨홀 속에서는 통신케이블 접속작업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은 이곳 통제실과는 관련이 없는 작업이었다. 아직도 통화가 되지 않고 있는 일반가입자를 살리기 위한 작업으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통신망을 관장하는 이곳 통제실과는 일단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김지호 실장은 다시 요람일기로 시선을 돌렸다.

1904년 2월 15일.

통신원의 전화시설에 일본군들이 불법으로 전화선을 연결하려다 김철영 체신과장에게 들통이 나 저지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