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유력 인사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IMF체제 이후 외국 IT업계의 유력인사로 미국 휴렛패커드(HP)사의 최고 경영자인 루이 플랫 회장과 인텔사의 크레이그 배럿 사장이 이미 한국을 방문했으며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에커드 파이퍼 컴팩컴퓨터 사장, 얀 반 바안 회장 등의 방한도 잇따를 전망이다.
이같은 세계 IT업계 유력 인사들의 잇따른 한국 방문은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경제위기가 최근 세계 경제계의 핫이슈로 등장함에 따라 이 지역의 사업여건을 재점검하고 투자 및 상호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IT관련 산업의 시장이나 기술수준 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활발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새 정부가 현 경제난국 타개방안의 하나로 정보화 확산을 역점정책으로 펼치고 있는 점이 이들의 방한을 재촉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듯 싶다.
특히 지난달 28일 루이 플랫 HP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하고 부동산 구매, 금융회사 설립, 중소 벤처기업 지원, 국내 현지법인의 운영자금 등에 사용하기 위해 총 3억 달러 상당을 올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이번 HP의 대규모 투자는 새 정부의 외국기업 투자유치 계획 가운데 IT관련 기업으로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IMF 관리체제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루이 플랫 회장은 세계 유력 IT업체로는 처음으로 국내경기가 장기적으로 회복,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대한(對韓)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새 정부에 상당한 신뢰감을 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루이 플랫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큰 지지를 보냈다.
또한 이번 HP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국내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 다른 외국 IT업체의 대한 투자의욕을 고취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자를 망설이고 있던 다른 외국 IT업체들에 강력한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며 외국 IT업체들도 과실송금에 주력했던 지금까지의 국내 시장정책에서 벗어나 인색했던 대한 투자 및 지원에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외국 IT업체들의 대한 투자 발표가 구체적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 막연한 비전제시 수준에 머물렀던 데 비해 이번 HP의 투자결정은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투자액수, 투자방법, 투자부문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다른 외국 업체들의 투자방식에 새로운 전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울러 이번 투자를 계기로 HP내에서 한국HP의 위상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HP의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촉발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특히 IMF체제에 따른 원화절하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국산 전자부품의 대미 수출 활성화에 이번 HP의 대규모 투자결정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밖에도 HP가 할부금융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다른 외국 업체들도 리스금융 확대 등 제품판매를 위한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HP의 투자결정을 시발로 앞으로 몇몇 세계적인 IT업체들이 5백만 달러에서 1억4천만 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새 정부의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이 본격 추진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 IT업체의 투자가 크게 활성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HP의 투자에서 볼 수 있듯이 투자내용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실업공포가 확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단순한 자금지원이나 건물매입, 리스금융사 설립보다는 생산촉진과 고용창출 및 국내수요 진작에 기여할 수 있는 대형 생산공장이나 조립공장, 연구소의 유치가 더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의 최첨단 IT업체들이 한국을 아시아지역 생산 및 마케팅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비교우위에 있는 정보통신, 컴퓨터산업의 일부 기업에 대해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전략적 제휴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고, 투자유치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략과 추진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최근 HP를 비롯한 외국 IT업체들이 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나 이는 원화절하와 IMF의 구제금융으로 투자수익이 호전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일정 정도 가셨기 때문이지 근본적인 투자여건이 좋아져 그렇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