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자상거래기본법 제정 신중 기해야

지난주 전자상거래기본법 시안이 마련됐다. 이 시안을 마련한 산업자원부는 이번주부터 관계부처와 민간의 의견을 수렴, 이달 말까지 법률 초안을 만들고 상반기중 공청회 등을 거친 후 다시 다듬어 8월까지는 법제체 및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산업자원부의 이 시안은 민간주도의 전자상거래 촉진을 위해 규제를 최소화하고 정부는 민간의 전자상거래를 기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자상거래 지원센터를 지정 운영하는 등 민간 경제활동 지원체제를 갖춰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 마련됐다. 이런 취지로 전자상거래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나 단체 등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기술 및 인력의 국제교류, 국제표준화, 공동 연구개발 등 상호주의에 입각한 국제적 연계도 가능토록 법적 규정을 두었다.

이밖에 전자상거래시 지켜야 할 의무와 준수사항을 규정하며 의무 위반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까지 마련했다. 다시 말해 전자상거래 전반을 포괄하는 기본법을 제정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법은 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의 「전자상거래모델법」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포괄적 전자상거래 관련 모법이라는 점에서 법률 관계자나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독일, 말레이시아 등 외국에서도 아직은 전자서명법 수준의 부분적 행위규정을 위한 법이 존재할 뿐 우리처럼 전자상거래 전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는 아직 없어 법 제정에 따른 부작용, 역효과에 대한 검증이 없다는 점이 불안요인인 것이다.

관계자들은 특히 우리의 전자상거래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외국에 비해 특별히 앞서 있는 수준도 아닌데 법 제정을 앞장서 서두를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좀더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전자상거래가 기존 상거래와는 패러다임을 달리한다는 점이 고려돼야 하는데 이번 법 제정 추진이 이런 차이에 대한 진지한 연구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세부적으로 접근해봐도 우선 쇼핑몰 개설에 현재도 제약요건이 많은데 시안에 나타난 「가상상점 개설을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신고」토록 규정함으로써 개설에 따른 절차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 나타나고 있다. 규제를 최소화한다는 산업자원부의 취지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전자상거래는 처음부터 국제적 상거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여느 사업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거래의 기반이 가상공간인 만큼 세금징수 문제, 교통 및 물류문제, 개인정보 보호문제, 지적재산권 문제, 표준화문제 등 사전 검토돼야 할 숱한 난제를 안고 있고 그래서 개별 국가의 법 제정 이전에 국제적 논의가 선행되고 있다. 오는 10월 OECD 각료회의에서 전자상거래 협약이 체결되면 각국도 이 협약 내용에 맞춰 관계법들을 정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기에는 우리의 전자상거래 기반도 취약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미미하다.

시행령 하나를 고치는 일도 절차가 간단치 않은데 하물며 모법을 손대기는 더 힘들다. 따라서 전자상거래 관련 모법이 될 이번 법안은 서두르기보다 좀더 치밀한 사전연구, 다듬고 또 다듬는 조심스러운 과정을 거쳐 보다 완벽한 법을 내놓으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제한적이기는 하나 이미 전자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관련 기본법 하나 없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행정부처에서는 나올 만하다. 그러나 기본법이 먼저 있고 나서 하위법과 관련법들이 있어야 한다는 경직된 발상 자체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해야 할 전자상거래 관계법 제정에서는 적절치 않다.

이번 시안에서 우선 「정보」 혹은 「전자서명」 같은 기초적 개념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못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을 만큼 이번 시안은 기본법으로서 여러 결격사유를 지니고 있다. 우선 세부적 개념을 규정하는 세부법이 먼저 마련되고 기본법을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관련법의 손질이 이루어진 다음에 기본법 제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법률적 토대에 대한 연구는 서두르되 법 제정 자체는 좀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관계부처에서는 과거의 낭비적 행정, 규제적 행정이 대개는 졸속 법제정에 기인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