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절연이 나빠졌을까? 절연고장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고장이 아닌데.』
『그렇습니다. 절연상태가 조금 나쁘면 소통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동은행의 전용회선 라인은 절연상태가 아주 나빴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그렇게 수리가 늦어졌지?』
『화재발생 전까지 잘되던 회선은 화재로 인해 장애를 입은 케이블을 절체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동은행 온라인 회선은 화재로 소손된 회선외에 다른 곳에도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에 시간이 늦어졌던 것입니다.』
『그래도 일동은행에서는 독촉이 오지 않았나?』
『일동은행에서는 당연히 화재가 발생해서 회선이 고장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촉을 하지 않았답니다. 고장 수리도 절연고장이라서 애를 먹었습니다. 절연이 나쁜 곳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였습니다. 케이블도 옛날 것이라서 토치램프로 일일이 달구어 케이블 외피를 뜯고, 다시 케이블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알겠네. 복구현장 좀 둘러보지.』
『알겠습니다.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김 대리는 미리 준비해 놓은 듯 안전모와 마스크를 김 실장에게 건네주었다.
맨홀.
도로 한복판에 자리한 맨홀이었지만 차량의 흐름에 큰 방해를 주지는 않고 있었다. 종로쪽 도로 위로 솟아오른 태양이 지나치는 차의 유리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했다. 맑은 가을. 맨홀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광화문 네거리 1호 맨홀로 내려섰다.
작은 원통형 맨홀이었지만 그 깊이가 매우 깊었다. 맨홀을 내려서는 층계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이미 전원이 복구되어 전등이 들어와 있어 어제 현장검증 때와는 다르게 불안감은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불에 탄 케이블과 불에 녹아내린 지지 철물은 다 밖으로 들어냈습니다. 이제 케이블 접속이 끝나면 지지대부터 다시 설치를 해야 합니다.』
『김 대리, 그 폐케이블 들어내느라고 고생들 많았겠는데?』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유독가스도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은 사태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검댕이 옷으로 묻어나고 있었다.
환풍기로 유독가스를 뽑아냈다고 해도 아직도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상황에서 복구요원들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