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적으로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상거래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이 분야에서 이미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배자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질서를 세계적 규범으로 제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마나 관련 인프라 구축과 시스템 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에서는 전자상거래 기본법 시안을 마련하고 관계부처 및 업계의 의견을 수렴, 기본법의 제정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대책과 그 추진의 구심점이 절실한 현시점에서 시의적절한 대응책이 아닐 수 없다. 국제규범과 선진국의 입법례를 토대로 기본법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원칙과 최소한의 규범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첫째, 전자상거래에 대한 국제규범 제정과 관련하여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자상거래는 민간주도로 수행되어야 한다. 특히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애요인이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전자상거래를 저해하는 각종 장애요인을 제거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전자상거래는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래내용의 신빙성(신뢰성)과 그 거래주체의 신원을 보장하는 인증업무, 개인정보(사생활) 보호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소비자보호 문제와 관련하여 주문 자체의 변질이나 주문제품과 다른 물품의 배달, 그리고 거래를 취소할 수 있는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전자상거래는 사이버공간에서 실물을 보지 않고 비대면으로 이루어기 때문에 분쟁이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신속하고 또한 기술적인 판단이 가능한 분쟁해결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전자상거래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자상거래 지원대책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산업자원부에서 마련한 전자상거래기본법 시안을 살펴보면 다행히 이러한 요구사항들이 전체적으로 충족되어 있다. 우선 이 기본법은 거래안전성 확보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규정을 제외하고는 경쟁의 원리에 따라 민간주도에 맡기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또한 거래의 안전성 문제와 관련하여 전자서명의 효력, 개인 거래정보의 누설방지 및 그 처벌조항, 인증업무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인증기관 설립 기준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 보호와 관련, 전자상거래자의 상호와 주소를 밝히도록 규정하고 또한 하자가 있는 물건의 교환, 반품 및 대금반환 조항들을 규정함으로써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한편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지만 분쟁조정위원회의 설립근거를 두어 큰 비용부담 없이 신속한 분쟁 해결절차를 마련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대부분의 전자상거래 관련기술을 선점하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기술개발은 물론 관련 산업발전을 위해서 효과적인 지원시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기본법안은 큰 의의를 가진다.
특히 이러한 정부 지원시책을 전담할 기구로서 전자거래진흥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며 현재 여러 기구에 산재되어 있는 전자상거래 관련업무를 통합조정할 기능을 부여한다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추진으로 중복투자와 예산낭비 등의 비 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년여에 걸쳐 준비된 이 전자상거래기본법은 UN무역법위원회(UNCITRAL)의 모델법이 규정한 내용을 토대로 OECD 등의 규범제정 내용과 선진국들의 단행법들을 참고하여 현재까지 제기된 문제점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진국의 입법례가 없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본법의 제정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지만 국내 관련업계에서는 국내규범이 없어 사업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고 전자상거래를 통해 제기된 거래안전성 확보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국내법이 없어 우리의 입장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국제규범 제정작업에 임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선진국의 시장선점 우위를 고정시키는 들러리 역할을 할 뿐 이라는 우려가 있다.
<崔泰昌 한국전자거래표준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