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78)

통신망의 관리에서도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매우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망을 이중화시키는데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맨홀 화재사고로 인한 통신망 두절 때에는 그 마이크로웨이브 회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무선시설인 마이크로웨이브 시설은 설치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여 외국에서는 통신망의 이중화를 위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안상의 문제때문에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남북의 분단과 대치로 인한 통신망 구성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회선의 절체와 복구에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과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확인일 수도 있었다.

통신기술과 시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복구작업에 대한 능력도 하루아침에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인력, 장비 모두가 균형있게 확보되어야 한다. 일부분에 대한 장애가 아니라 건국이래 최대의 통신사고였던 이번 사고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나라 통신능력이 다만 외형적인 시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것은 일단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신속히 대처할 인력과, 그동안 자체 개발한 광케이블 및 각종 통신 케이블이었기에 충분한 기술력이 확보되어 있었으며 1백여년만에 단 한번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대비, 언제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수 있는 고장을 위해 사전에 충분한 기술력과 예비물량을 확보하여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비록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반대로 우리의 기술력과 경험, 복구능력을 시험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번 사고를 처리하면서 김지호 실장은 차라리 상쾌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대조시험을 하고 있는 복구요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도 남아있는 그을음에 온몸에 검정칠을 한 채 작업에 열중인 그들에 대하여 숙연함을 느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냄새와 먼지 속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김 대리,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어 있지?』

『네, 일단 복구작업이 완료되면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특별점검반을 편성하여 전국 통신구의 토목구조, 전기설비, 보안시설 등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게 될 것입니다. 점검결과 화재 등 사고가 우려되는 취약 부분에 대해서는 자동 화재경보장치와 자동소화기를 보강하고 통신구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