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조정 올바른 방향은 "기술개발"

전자산업계에 조직 슬림화 바람이 불고 있다. 구조조정의 한 방안으로 진행중인 이러한 바람은 우리 경제가 거품을 제거해야 하는 현 시기에 불가피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조직 슬림화나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우려하는 소리들이 적지 않다.

조직 슬림화가 됐든 아니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한 조직간 통폐합이 됐든 그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이 기업답게 생존하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나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어두운 산길에서 길을 잃고 허둥대느라 점점 더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되돌아봐야 한다.

당장의 부도를 막기 위해 급급한 중소기업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동안 세계 몇 위라는 허명에 들뜰 수 있었던 대기업들마저 방향을 제대로 못잡고 허둥대기만 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기에 대기업의 올바른 방향잡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된다. 흔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대를 정보화시대라고 구분한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너나없이 정보화의 근간이 되는 정보통신 분야를 주력업종으로 정하고 이들 기업을 지키고자 애를 쓰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분야라 해도 한두 개 업종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통신 단말기 몇 대 생산능력을 갖추었다고, 또는 컴퓨터 몇 대 수출했다고 정보화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기업으로 자부할 수는 없다. 무수히 많은 관련기술 가운데 최소한 국제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자체 기술 몇 개는 갖추고 있어야 합종연횡을 통해서라도 설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기업들이 정보화시대를 대량생산의 효율이 극대화됐던 기계화시대의 사고 위에서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돈만 주면 기술은 쉽게 살 수 있다는 안이한 발상으로는 기술에 기업 사활을 건 세계적 기업들과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제까지 단순 기술이라면 돈주고 사는 일이 그닥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체 기술을 갖추기 위해 몇 년씩 기술투자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어려운 길보다는 쉽게 외국 기술을 도입하는 길을 택해 왔다. 그 결과 요근래 고환율 속에 특허료 비상이 걸렸다.

평화시대에는 교역도 활발하고 돈이면 필요한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평화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지금은 총칼만이 무기인 사회도 아니다. 국력을 토대로 한 무역장벽은 공정교역을 기치로 내건 WTO체제의 윤리조차 후발 산업국에게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강제적 의무로 만들고 있다. 이런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의 토대는 바로 기술이라는 점을 기업들은 주목해야 한다. 기술은 이제 산업의 기초 식량이 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초 식량은 산업안보의 백그라운드로 작용한다.

정보화시대는 기술집약형 기업구조를 요구한다. 60년대 초반 노동집약형 산업구조로 출발한 국내 산업은 불과 30여년 만에 자본집약형 기계화시대를 거쳐 기술집약형 정보화시대로 들어서게 됐다. 이런 빠른 변화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끊임없이 급격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경영자의 사고전환 속도가 산업구조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쇠망할 수밖에 없다.

노동집약형 산업구조에서는 단기적 전망만으로도 기업을 키워갈 수 있었다. 자본집약형 산업구조에도 단기, 중기 전망만으로 기업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술집약형 산업구조는 기업에 단기, 중기 전망 위에 장기 비전을 가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장기 전망은 철학적 기반없이 나올 수 없다. 자본집약형 사고로 정보화시대에 진입한 기업은 시대의 흐름에 끌려다니기만 하다가 좌초하기 십상이다.

이제라도 기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고부가가치의 창출없이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창의력을 토대로 삼아야 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현재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인 학력위주 사회풍토를 바꾸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단순한 암기식 교육은 결코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불가피하게 조직 슬림화를 진행시키더라도 창의력을 토대로 한 기술개발에는 더욱 힘을 쏟아부어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도 학력 위주의 사회에서 탈피할 수 있는, 사회개혁을 견인해 낼 수 있는 미래산업의 기술개발에 더욱 정책적 힘을 몰아줘야 한다. 그런 정책이 결국 국민의 사고를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적응시키고 발전적인 국가의 미래를 담보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