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83)

평상시 지점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나 큰 사고를 당한 뒤의 당혹스러움에 평상시의 성격이 일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현미가 대답도 하기 전에 다시 물었다.

『온라인이 끊어졌을 때 무엇하고 있었어?』

『지점장님, 그날 혜경씨한테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전산망이 오프라인이 되었을 때 혜경씨의 단말기도 같이 오프라인이 되어있어서 아무 작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미 모든 전화도 불통이어서 본점 전산실에 연락도 못한 채 그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이 났을 때는?』

『그냥 있었습니다. 전산망은 계속 오프라인이었고, 전화도 계속 불통이어서 그냥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 앞에 나가서 불구경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후리지아.

혜경의 빈자리에 놓여져 있는 후리지아.

현미는 그 순간 다른 직원들이 혜경의 빈자리에 놓아준 꽃다발 중에서 유독 짙은 향기를 내고있는 후리지아를 바라보았다. 지독한 향기가 현미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단말기. 혜경이 쓰던 단말기가 꽃다발에 묻혀있는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저 후리지아와 다른 꽃들이 혜경의 자리에서 치워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지점에서 작업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지점이라잖아. 온라인이 끊겼는데 어떻게 송금이 되었느냐구. 김 차장, 어떻게 된 것 같아?』

『지점장님, 온라인이 끊긴 후에 일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는 분명히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되었고, 이 은행 안에서는 아무런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맨홀 케이블 화재로 인하여 모든 온라인 회선이 오프라인으로 되었고, 전화도 모두 불통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작업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그렇다면 어디서 작업이 되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알아보아야겠지만, 이 은행 내부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작업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혜경의 패스워드는 어떻게 된 거야. 아홉자리 패스워드가 다 맞았다면서?』

『네, 혜경이한테 주어진 패스워드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단말기도 혜경의 단말기에서 작업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혜경이는 그 시간에 사무실에 있었다면서?』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그런 짓을 했냐는 것이야? 죽은 사람 살려내서 물어볼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