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정책기술의 중요성

현 난국을 돌파하는 핵심수단으로 정부나 민간에서 너나없이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비단 과학기술만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기술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과학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정부의 정책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과학기술도 중복투자에 의한 개발의 낭비를 초래하거나 기술 사각지대가 나타나기 쉽다. 그 기술이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개발, 소유되고 향유돼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봐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방향을 모르고 뛴다면 소용없는 노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마다 첨단도시 건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으며 자기 지역을 첨단기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청사진 내놓기에 분주하다. 최근 들어서만 해도 인천이 미디어밸리를, 춘천이 인력양성의 메카를 자임하고 나섰다. 지자체 차원에서 이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하고자 하는 만큼 국가 차원의 검토 위에 낭비없고 기술 사각지대도 만들어내지 않을 종합적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자원을 조금이라도 낭비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짜임새 있는 정책이 나온 후에 지역간 균형발전까지 염두에 둔 지역별 배치를 해야 한다.

매사 즉흥적 결론은 위험하다. 특히 그간 국가정책이 그 즉흥성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난국을 초래한 만큼 급할수록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정책적 습관들이기가 요구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당장 수익성 높은 기술개발도 필요하지만 장, 단기 기술수요가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분야별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기술 수용능력은 충분한지 등 사전에 검토해 봐야 할 일은 많다. 엘리트의식이 넘치는 관료들의 책상머리에서 쉽게 판단하고 즉흥적으로 추진하던 습성은 서둘러 버려야 한다. 결과물부터 기대하고 서둘기 전에 제대로 된 틀을 만드는 데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우선 기술개발을 위해 어떤 부문에 수요가 일고 있는지, 현재 고비용 투자없이 활용할 시설과 인력은 있는지 등 기반점검부터 해봐야 한다. 일부터 벌여놓고 필요한 인력이 없어 시설이 낭비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국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것이며 지자체 입장에서도 지역 발전보다는 이미지 실추와 자원낭비만 부를 뿐이다. 전국을 단일 설계도면으로 놓고 인력양성 지역과 기초연구단지와 산학연계 연구단지, 생산메카, 텔레포트와 같은 응용도시 등을 상호 연계성과 지역특성 등을 고려하며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즉 지역특화를 함께 도모하며 국가 전체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적 판단 못지 않게 정책운용에 요구되는 기술이 미세조정술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정책운용은 매우 거칠었다. 서투른 초보운전자가 주행을 서두르다 핸들의 미세조정을 잘못해 사고를 일으키듯 국가정책이 미세조정에 실패해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곤 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작고 섬세한 손을 가졌지만 섬세한 작업은 잘 못한다. 색칠하기 하나만 해도 선 바깥으로 색이 번져가지 않게 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제까지 우리의 관료사회가 마치 어린 아이들 색칠하기 하듯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온 것이 아니냐 싶다.

이제까지의 정책은 정부 부문의 유아교육기였다고 봐준다 해도 앞으로 그같은 서투른 정책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이미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고 아직도 벼랑 끝을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같은 서툰 정책운용은 국가를 다시 벼랑으로 몰고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더해 정책기술의 토대가 될 열린 사고를 당부한다. 이제 정책적 사고도 좀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개방시대에 걸맞는 적극적 사고 못지 않게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를 하나의 도면으로 보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이제까지 울타리 안에 있는 국민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수행해 왔다면 이제는 우리 국민이 나가 있는 곳은 세계 어디라도 정책의 영역으로 여기는 대담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국민을 이끌어가는 인력은 고구마 줄기처럼 세계 어디라도 뻗어나가게 하되 연결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요즘 미국이나 일본같은 기술선진국에서 우리의 정보통신 기술인력에 대한 수요가 일고 있다고 한다. 고환율, 고실업 시대에 외화벌이 차원에서 이를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국내 기술인력 공동화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라도 적극적 사고로 대응하면 길은 보인다. 우리가 세계 기술시장의 인력공급국이 된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그 전에 한편에선 기술인력 실직사태가 일고 다른 쪽에서는 기술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산업현장의 불균형 인력 상황을 좀더 세심하게 조사 검토한 위에 부문별 수요를 감안해 정책이 입안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