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반도체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획기적인 단초가 마련됐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2백56M D램을 세계 처음으로 생산에 성공,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에 또 하나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보탰기 때문이다.
2년 가까이 복합불황에 시달려 온 국내 반도체산업으로서는 이번 2백56M D램 생산은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은 모처럼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2백56M D램의 생산은 급강하했던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새롭게 도약하는 전략적인 변곡점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번에 생산한 2세대 2백56M D램을 IBM을 비롯해 휴렛패커드, 컴팩, 인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7개 주요 컴퓨터업체에 공급한 후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으로 있어 내년 하반기에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외국 경쟁사보다 적어도 1년 이상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첨단기술에서 1년이라는 격차는 부가가치 면에서나 시장장악력 면에서 엄청난 선점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번 2백56M D램의 조기생산은 16M 및 64M D램 가격의 동반하락으로 고전해 온 국내 반도체산업을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외국 경쟁업체들이 국내 업계의 시설투자나 시장확대 전략에 음으로 양으로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설비투자 없이 기존 64M 생산설비로 2백56M D램 생산한 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천문학적 재원이 들어가는 투자부담을 덜고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IMF체제 이후 자금줄이 묶여 추가 설비투자를 엄두도 못내는 때에 기존 생산설비를 활용해 시장성 있는 2백56M D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으니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 가를 능히 잠작할 수 있다.
첨단기술은 누가 먼저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가에 달려 있다. 선점효과가 가장 큰 분야가 바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조기상품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최근 D램 시장은 전문기관의 예측지수가 완전 빗나갈 정도로 시계 제로 상태다. 시장 자체가 불예측적 상황으로 빠져들어 반도체 경기 사이클은 물론이고 가격조차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공급과잉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책인 한국과 일본 업체간에 추진도됐던 「감산 카드」도 후발업체들의 반발로 성사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다.
초긴장 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앞서갈 수 있는 법이다. 절박감을 갖지 않은 기업은 결국 도태되고 만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과거에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조금만 안이하게 대처하면 급하강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도 선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메모리 분야에서 앞서간다고 해서 영원한 승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향후의 반도체산업과 이에 영향받는 모든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은 메모리보다는 비메모리 기술에서 판가름난다. 아무리 큰 공장과 시설이 있어도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력있는 설계 기술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비메모리 분야의 특징이다.
세계의 기업들은 기술을 무기로 살아남느냐 도태되느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산업에서 기술전쟁의 양상은 한층 더 치열하다. 이종산업의 침투와 기업간 제휴로 인해 적과 동지, 시장 주도자와 시장 추종자가 불분명한 가변적인 상황이 언제 전개될지도 모르는 게 반도체산업의 속성이다.
지금까지 반도체에 요구되는 기술은 고집적화, 대용량화, 저전력화였다. 그러나 멀티미디어시대에는 디지털 신호를 기반으로 음성, 문자, 영상, 동영상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속도가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메모리 제품에서도 지금까지의 집적도 경쟁에서 속도 경쟁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렇듯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메모리 분야에서만큼은 언제나 제일을 지향해야 하고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다른 경쟁자가 따라잡기 힘든 고유의 독특한 기술력을 배양해야 한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이번 2백56M D램 세계 첫 생산을 계기로 다시 한번 무장해 세계시장을 주도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