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방향의 도로에도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틀 전, 도로 중앙의 각 맨홀마다 치솟던 불길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복구작업은 맨홀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늦은 가을. 김지호 실장은 하나둘씩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는 가로수 낙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동은행 전용선에 어떤 고장이 더 있었지?』
『화재로 소손된 통신케이블은 접속이 끝나면 다른 곳의 전용선처럼 고장이 수리된 줄 알았고, 일동은행에서는 바로 앞에서 발생한 화재때문에 고장인 줄 알고 독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실장님 전화를 받고 확인해 보니 고장이 회복되지 않아 다시 수배를 했습니다. 그때 통신케이블의 절연이 나빴던 것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로 수리가 된 것인가?』
『아닙니다. 단순한 절연상태가 나빴던 것이 아닙니다.』
『한 군데만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 절연불량이 발생해 있었습니다. 한 군데를 수리하고 시험을 해보면 다른 곳에 또 절연이 나빠져 있었습니다.』
『절연상태가 나빴던 장소가 어디였지?』
『일동은행 뒤에 있는 창연오피스텔 바로 아래였습니다. 절연상태가 나쁘면 케이블을 교체해야 하는데, 어제와 같은 경우에는 고장수리요원들이 모두 복구작업에 투입되어 한정된 전용회선의 수리에 인력을 활용하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한 군데 통신케이블을 교체하고 나면 다른 곳에도 절연상태가 나쁜 것이 발견되어 어려움을 겪었고, 토치램프로 납을 녹여 케이블을 열고 심선을 교체한 후 다시 토치램프로 봉해야 하는 연피 케이블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렸습니다.』
『고장장소가 창연오피스텔 바로 밑이었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창연오피스텔 아래 맨홀이었고, 절연이 나빠진 케이블은 구형 케이블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느 팀에서 작업했는지 알고 있지?』
『네, 광화문지점 전람팀에서 작업했습니다.』
『알겠네. 식사하고 나서 한번 만나보도록 하지.』
『실장님, 그런데 일동은행에서 무슨 문제가 발행했습니까?』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어. 화재가 발생하던 날 은행의 전용회선을 통해 거액의 돈이 다른 은행으로 불법 송금처리 되었어.』
『금융사고인가요?』
『그래. 문제는 은행의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된 상황에서 처리되었다는 점이야.』
『오프라인 상황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