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통신, 부가통신 등 두 영역으로 양분됐던 국내 통신서비스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별정통신이라는 신개념 통신서비스가 등장했다. 새로운 통신사업법의 실시와 함께 공전공(공중망-전용회선-공중망) 접속이 허용됨에 따라 지난 한해동안 「준비된 서비스」에 머물렀던 별정통신이 올해 1월1일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별정통신서비스는 용어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별정통신서비스의 핵심은 재판매. 재판매는 전화, 이동통신 등을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설비, 서비스를 사거나 빌려서 이를 다시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별정통신사업자는 막대한 투자를 통하지 않고서도 통신사업에 진출하는 효과를 얻고 소비자의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국내 통신시장이 업체들간 과당경쟁으로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서 별정통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썩어도 준치」격은 되지 않겠느냐는 다소 낙관적인 견해가 사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4개월동안 무려 30여개 가까운 업체들이 별정통신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안에 30여개 업체가 추가로 별정통신사업자라는 이름표를 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별정통신 분야에 진출한 업체들은 올해는 아니더라도 2, 3년 내에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차있다. 특히 전국적인 통신망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의 경우 그룹사 물량 만을 흡수하더라도 투자 대비 효과가 확실하다는 계산을 이미 끝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올해초 발표한 「정보통신산업 발전 종합계획」 보고서는 별정통신사업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KISDI는 이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별정통신 시장이 1천2백50억원 규모에 달하고 오는 2002년에는 총 4천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정확도 여부를 떠나 국내 별정통신산업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가들이 1천여개 이상의 별정통신사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장거리통신요금이 최대 40%까지 할인됐다는 사실 역시 별정통신사업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향후 기간통신, 부가통신과 함께 국내 통신서비스를 떠받칠 것으로 예상되는 별정통신은 크게 3개 분야로 나뉜다. 설비보유 재판매, 설비미보유 재판매 및 구내통신 등이 그것으로 정보통신부는 지난해까지 1종, 2종, 3종으로 나눴던 구분법을 올해 이같은 방식으로 바꿨다.
설비보유 재판매는 다시 인터넷폰, 음성재판매, 국제콜백서비스 등으로 나뉘고 설비미보유 재판매는 가입자모집(호집중) 및 재과금사업으로 구성된다.
인터넷폰은 이름 그대로 인터넷망을 통해 국제, 시외전화를 걸 수 있도록하는 서비스로 현재 12개 업체가 참여, 이를 제공하고 있거나 제공할 예정이다. 음성재판매는 국제, 시외전화서비스라는 점에서는 인터넷폰과 동일하지만 전용회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인터넷폰과 다르다. 업체들은 별정통신 가운데 음성재판매가 가장 사업성이 있는 분야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국제콜백서비스는 국내와 해외의 국제통화요금 격차를 이용한 서비스로 전세계의 전화요금의 차이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어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가입자모집 및 재과금사업은 교환설비를 갖고 있지 않은 사업자들이 추진하는 것으로 가입자모집은 다수의 지역에 산재한 고객들을 할인요금 대상의 단일고객으로 묶는 사업이다. 재과금사업은 기간통신사업자로부터 과금자료를 받아 자신의 가입자에게 재과금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 때 사업자는 별도의 과금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구내통신사업은 통신수요가 대량발생 하는 일정한 건물, 지역에 전기통신설비를 설치, 가입자에게 유, 무선통화 및 데이터전송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4월말 현재 정보통신부에 별정통신사업 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30개. 이 가운데 26개 업체가 등록증을 교부받았으며 나머지 4개 업체는 등록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들 업체들은 규모와 주요사업별로 통신사업자군, 시스템통합(SI), 온라인서비스 업체군 및 전문업체군으로 나뉜다. 통신사업자군에는 데이콤, SK텔레콤, 한솔PCS, 서울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 등이 속한다. 이들은 기존의 노하우를 이용, 가장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제공중인 이동통신서비스와 별정통신을 연동하는 한편 각종 부가서비스도 지원할 계획이다.
SI업체, 온라인서비스 업체군에는 삼성SDS, 포스데이터, 현대정보기술, 쌍용정보통신, 아이네트, 한국무역정보통신 등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SI업체들은 주로 대그룹에 속해있는 업체들로 계열사들에 대한 서비스만으로도 사업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로 별정통신 전분야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와 함께 자본금 30억원 만을 들고 대형기업들과 자웅을 겨루게 될 별정통신 전문업체들은 대략 10개 정도다.
이들 가운데 몇몇 업체는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한국통신 등 기간통신업체에서 교환기 운용경험을 쌓은 전문인력들이 벤처기업 형태로 이 분야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앞으로 별정통신시장에 참여할 업체들도 이처럼 소규모의 기업들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기존 통신서비스에 비해 가격이 획기적으로 저렴해 사용자들로부터 환영받게 될 별정통신서비스는 그러나 탄탄대로만을 걷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재한 걸림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별정통신서비스는 명백하게 틈새시장을 노린 사업이다. 달리 말하면 기간통신사업자의 고객을 뺏어옴으로써 시장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규수요 확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별정통신사업자의 무분별한 난립이다. 벌써부터 사업자 난립과 이로인한 시장질서의 혼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나눠가져야 할 파이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자 진입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의미한다. 이같은 상황은 자칫하면 끝없는 가격 하락경쟁으로 이어져 시장의 파행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