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07)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여러 종류가 있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은 그 범인의 체포가 용이하다. 현장은 복잡하지만 바로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은 단순하다. 단순한 만큼 수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범인들이 쏟은 정열만큼 수사진들도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범행을 계획하고 저지른 범인들보다 적게 생각해서는 사건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여자가 죽어 있던 창연오피스텔의 현장도 단순했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편안하게 잠자다 죽은 듯했다. 다만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죽어 있을 뿐이었다. 잠들기 전 누군가와 한잔의 술을 마신 흔적이 있었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욕정의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침입의 흔적이나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다만 죽어 있을 뿐이다. 현장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할수록 그 실마리를 찾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현장에 들어서면서 조 반장은 아주 단순한 돌연사거나 아니면 아주 복잡한 사건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차량의 흐름은 원활했다. 조 반장은 모처럼 도심 한가운데서 스피드감을 느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번 사건이 보통 사건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요인 하나가 더 있었다. 현재까지 죽은 여자에게 연락가능한 가족이 없었다. 하루가 다 지난 지금까지 그 여자와 관련된 사람은 은행직원들뿐이엇다. 경찰 전산망을 통해 조회를 해봐도 보호자를 찾을 수 없었다.

광화문 네거리.

하늘 높이 불길이 치솟던 광화문 네거리 맨홀에는 단 한군데의 맨홀에 작업중이라는 표시가 남아 있을 뿐, 화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모든 통신시설도 정사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한 개의 맨홀을 제외한 모든 맨홀에는 뚜껑이 덮혀 있었다. 조 반장은 이번 사건들이 맨홀에 뚜껑이 덮이듯 그렇게 감쪽같이 닫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경복궁 쪽으로 접어들어 유톤한 후 일동은행 쪽에 차를 세웠다. 바로 뒤가 창연오피스텔. 그 오피스텔을 바라보면서 조 반장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죽어 있던 여인의 모습을 확연히 떠올렸다. 남자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그런 몸이었다.

조 반장은 그 여인의 모습과 함께 앞가슴과 둔부, 그리고 앞쪽의 두덩이 반질반질 윤이 나던 테라코타의 모습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