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09)

『강 형사, 잘 설명 좀 해주게나. 단말기에서 일일이 작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다른 은행으로 송금이 가능하지?』

『네, 반장님. 단말기에서 직접 작업한 것이 아니라 전산망 어딘가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자료를 송신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가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지만, 제 판단으로는 시간상 단말기에서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알았네. 한국전신전화주식회사 통제실의 김 실장과 기술적인 것을 확인해 보겠네. 자료는 다 확보했지?』

『네, 은행에서 준비한 자료는 다 확보했습니다. 각 은행에서 돈이 인출된 시간까지 파악되었습니다. 하지만 단말기와 패스워드의 주인이 죽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매우 복잡하게 할 것 같습니다.』

빈자리.

조 반장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은행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와 죽은 혜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던 현미라는 직원의 옆자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비어있었다.

가상의 자리처럼 여겨졌다.

『현미씨. 어제 나에게 소개해준 통제실 김 실장과 연락이 가능하겠소?』

『네, 오늘아침 맨홀 화재사고 현장에 왔다가 잠깐 들렀었습니다. 바로 연락이 가능할 것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곳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까 경찰서에도 들렀었소.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어디에 계신지 수배 좀 해주시오. 상의할 사항도 있소. 우리는 창연 오피스텔에 다시 한번 가보겠소.』

『다녀오시지요. 통제실장님이 어디계신지 알아놓겠습니다.』

조 반장은 창연 오피스텔로 향했다. 늦가을 태양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시원한 바람이 일동은행 뒷편 듬성듬성 남아있는 느티나무 잎사귀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테라코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조 반장은 윤이 나는 테라코타를 떠올렸다. 누군가에 의해서 만져져 앞가슴과 둔부, 그리고 두덩이 반질반질 윤이 나던 테라코타.

유난히 육감적으로 만들어진 테라코타에 손때가 타면서 더욱 육감적으로 보이던 테라코타였다.

창연 오피스텔.

허름했다. 안내실은 비어있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18층. 조 반장은 18층에 내려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맨 끝방. 수사중, 접근금지라는 테이프가 가로질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