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의 공급과잉과 이로 인한 지속적인 가격하락으로 반도체업계가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4월 미주 지역의 반도체 현물시장에서는 2M×8 형태의 16M 싱크로너스 D램이 1달러대까지 하락했으며 64MD램도 8M×8 형태의 EDO제품은 8달러대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이 가격은 등락의 폭이 큰 현물시장 가격으로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공급초과 상황에서는 고정거래 가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현물시장에서 D램 가격이 폭락한 직후 고정거래 시장은 지난 4월 말에 16MD램 가격이 25%나 폭락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반도체업체의 주력 제품인 64M 싱크로너스 D램 가격마저도 사상 처음으로 10달러선이 붕괴돼 국내 반도체업체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거의 모든 64MD램 가격이 1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업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64MD램 가격의 마지노 선이라고 생각했던 13달러보다 3달러나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 3월에는 소폭이나마 신장세를 보였던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이 4월부터 감소세로 반전해 전월보다 9.1%가 줄었으며 5월에도 감소세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대폭 떨어졌으니 수출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이 반도체업체들의 채산성 악화로 직결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이처럼 위기에 처한 것은 크게 보면 구조적인 약점과 일시적인 현상이 겹친 데 따른 것이다.
먼저 우리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문제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뛰어든 80년대부터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 폭락과 폭등을 거듭 경험해야만 했다. 비메모리와 달리 수급이 안정적이지 못한 메모리산업은 때때로 가격 폭락을 맞아야만 했다. 국내 반도체산업 구조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 수시로 닥쳐오는 어려움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반도체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그것은 누차 지적돼온 것과 같이 수급구조가 비교적 안정되고 부가가치가 큰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의 비중을 키우는 길이다. 최근에 열린 반도체 분야의 민간협의회에서 정부도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표명한 바 있다. 이제 국내 반도체업계나 정부는 반도체 경기를 회생시키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두번째는 일시적인 문제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공급과잉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채산성이 악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반도체업체들의 대대적인 설비투자로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난데다 대만과 미국 업체들도 메모리 반도체사업에 주력함으로써 이번 공급과잉 현상이 비롯됐다. 현재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5억4천만개 정도이나 공급은 이보다 10%를 웃돈다고 한다. 특히 대만과 미국 업체가 16MD램 생산을 늘렸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64MD램을 생산하면 공급초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현재 우리가 처한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단기간에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의 공급과잉 문제는 컴퓨터산업 동향이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대만 등 공급업체 상황 등을 종합해 보면 시일이 좀 지나면 해결됐던 여느 때와는 정황이 좀 다르다. 따라서 소극적으로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형세를 반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지켜본다는 것은 결국 한 두 업체의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다른 업체들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도 클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반도체 3사는 엇갈린 이해를 조정, 통일된 방침을 세우고 미국, 대만 업체들과 국면타개를 위해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야 한다. 업계의 이같은 노력에 더해 정부는 각종 외교채널을 동원, 미국, 대만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반도체 경기를 회생시킬 대책마련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