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신전화(NTT)가 지난 3월부터 본업과 상관없는 가정용 PC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일본 국내 PC 판매는 사상 처음으로 전년실적을 밑돌았으며 특히 NTT가 타깃으로 하고 있는 가정용 PC시장은 판매대수가 10% 이상이나 떨어져 업체간 이익없는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최악의 시기에 PC 시장에 진출하는 NTT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은 NTT가 사력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데이터통신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NTT는 일본 전역에 7백57개소의 영업거점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 거대한 판매망을 이용한 96년도 NTT의 통신단말기 판매 매출은 2천5백16억1천9백만엔. 이 규모는 일본 최대급 가전양판점의 한해 전체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주민들은 이제 전화기, 팩시밀리 등을 가전양판점에서 구입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가전양판점 수가 적은 지방에서는 NTT 대리점을 통해 통신기기를 구입하는 인구가 아직도 적지 않다. NTT가 PC 판매에 자신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폭넓은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신규참여시장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NTT도 이 점을 인식, 파격적인 서비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파격 서비스란 다름아닌 자사 영업거점의 인력을 이용한 설치, 통신(인터넷)접속, 유지, 보수 등의 토탈 서비스. NTT로서는 공사시대에 채용한 인력들을 구조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일본의 PC 잠재수요층 가운데는 시대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PC를 사용하고 싶어도 설치와 활용에 자신이 없어 구입을 망설이는 인구가 아직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가정용 PC시장이 부진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초보자를 위한 완벽한 서비스의 부재를 꼽기도 한다. 실제로 PC판매에서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한 NTT 영업소의 관계자는 『현재 NTT를 통해 PC를 구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PC 초보자들로 이들은 복잡한 소프트웨어 설정과 통신기기 접속 등의 작업을 피하기 위해 NTT를 선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 NTT가 현재 공급하고 있는 PC는 일본IBM의 「압티바 시리즈」로 인터넷 접속기기를 포함한 총 구매가는 데스크톱 PC 31만9천엔, 노트북PC 40만1천4백엔. 이 가격은 일본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에서 구입할 때보다 3-4만엔 정도 높은 수준이다. 설치, 유지 서비스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같은 물건을 몇만엔 이상 비싼 가격으로 구입할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TT PC가 속속 팔려나가는 이유는 NTT의 토탈서비스에 아날로그 회선을 ISDN 회선으로 전환해 주는 서비스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NTT PC 고객들은 PC를 주문한 뒤 10일 이내에 자택 아날로그 가입전화를 ISDN회선으로 전환해 주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동시에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회원이 된다. ISDN 회선은 한 개 회선으로 두 개 회선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를 걸면서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아날로그 회선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2배이상 빠르게 때문에 인터넷을 더욱 빠르게 즐길 수 있다.
한편 NTT는 이 과정에서 매월 ISDN 기본사용료와 인터넷 접속 서비스 이용료, 통신료를 얻게 된다. NTT가 PC 판매를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NTT는 PC 판매 사업에서의 이익은 크게 중요시 하지 않는다.
NTT의 이번 PC 판매 사업은 단말기를 무료로 제공해 이용자를 늘리는 휴대전화 및 PHS 사업 방법을 그대로 활용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휴대전화와 PHS 서비스회사는 제살깍아먹기식 과열경쟁을 벌였으나, NTT는 경쟁없이 ISDN회선과 인터넷접속서비스를 묶어 판매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막강한 경쟁력 때문에 PC판매 자체에서도 높은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PC판매 사업에는 「NTT법」이 현실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매우 높다. NTT 사업 가운데 가입전화와 ISDN으로 대표되는 전화사업과 인터넷접속사업은 본래 업무에 속하지만 단말기 판매 사업은 부대업무에 해당된다. 「NTT법」에는 2개 이상의 사업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따라서 부대업무의 적자를 본래업무로 보충할 수 없어 부대업무에서 얻은 영업이익의 범위 이상 PC 판매 가격을 크게 낮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가격 경쟁력 확보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NTT는 통신서비스 사업이 아닌 하드웨어기기 판매 사업을 할 경우 제품조달과 관련한 제한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PC사업의 경우 필요한 PC의 사양, 성능, 가격 등의 조건을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정부 기관지를 통해 공고해야 할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공고중인 조달 조건과 절차 등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NTT가 판매하고 있는 일본IBM PC도 지난해 7월25일 공고를 거쳐 연말에야 조달처가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PC가 3개월 이상이 지나면 사실상 신제품 대열에서 멀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제약은 취약점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NTT의 주력 사업 방향이 음성 전달에서 데이터 전달로 바뀌고 있다. 또 사업 환경도 요금개정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는 등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NTT가 PC판매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통신규제가 잇따라 완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전화회선을 사용한 데이터 통신사업 규모 확대의 호기라고 판단한 때문임이 분명하다.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일본 전화사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NTT로서는 독점 관련규제를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묘책를 마련하는 일에 이번 PC 판매사업의 성폐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심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