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는 구호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며 느끼는 우리 삶의 또다른 형식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보문화센터는 우리 시대 정보화의 상징으로 가정에서 정보기기를 효율적으로 이용, 정보시대를 앞서가는 모범가족을 해마다 선정하고 있다. 올해 「정보가족」으로 선정된 이인호씨와 김용진씨 가족의 정보화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 상철이네 가족
『12세 한 소녀의 생명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팔순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한 소녀가장이 백혈병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꺼져가는 촛불을 지켜주세요. 엄청난 수술비를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시는 여러분의 조그만 정성이 필요합니다.』
96년 9월 어느날. PC통신에 단발마의 「SOS」 요청이 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한 소녀가 불치병이라는 백혈병과 투병하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애타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윽고 성금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인근에서부터 멀리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온정의 손길이 밀어닥쳤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올린 PC통신의 구원요청이 전국으로 번진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한 장본인은 충남 서산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는 아버지 이인호씨(43)와 간호사인 어머니 안진숙씨(41), 장남인 상철(중1)과 쌍둥이 동생 상헌, 상현 네 가족이다.
이들 가족은 가족 홈페이지(http://soback.kornet.nm.kr/∼taekwon)를 만들 정도로정보가족이다. 이 가족 홈페이지에는 서산시의 모든 정보와 관광 등 가족들이 소중하게 만든 정보들이 담겨 있다. 한 대도 갖기 힘든 펜티엄급 PC 두 대를 갖다놓고 공부와 채팅, 문화생활을 모두 PC 하나로 해결하는 으뜸 정보가족이다.
그런 상철이네가 백혈병 소녀의 소식을 접하자 이를 돕기 위해 저금통을 헐고 서산시내 전체를 돌며 모금활동을 하는 등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개인의 도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상철이네는 어떻게든 소녀 가장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울 길을 찾다가 PC통신을 통해 구원을 요청하자는 묘안을 내게 됐다.
결국 PC에 올린 구원의 손길 사연은 제 빛을 발해 백혈병 소녀는 수술을 받게 됐다. 그러나 상철이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다시 뇌종양으로 밝혀져 결국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상철이네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백혈병 소녀의 장례를 도와준 후 PC통신을 통해 따뜻한 사랑을 전해준 전국의 네티즌들을 위해 지난해 1월 서산시 홈페이지를 만들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업그레이드를 해가며 여러 질문에 답해줘야 하는 다소 귀찮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상철이네는 백혈병 소녀의 애틋한 생을 그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컴퓨터와 대화하고 있다. 결국 백혈병으로 고인이 된 한 소녀와 만남이 상철이네 가족을 정보화가족으로 다시 우뚝서게 했다.
* 정아네 가족
『아파트 부정비리에 대한 모든 상담은 PC통신 천리안과 유니텔 「아파트관리/하자정보」(go apart)로 오세요. 우리 아버지가 친철한 상담원이 돼 드릴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 김정아 어린이는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럽다. 2년 전 동장직을 맡으면서 주민들이 모르는 아파트 부정비리가 너무 많다는 생각에 PC통신을 통해 아파트 비리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렇지만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아버지가 더없이 자랑스럽다.
아버지 김용진씨(40, 레드링크 대표)는 IP사업을 하고 있는 컴퓨터 베테랑. 95년 전화국에서 임대해준 단말기를 가지고 PC통신 하이텔과 처음 만났다.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통신을 하면 좋은 문제를 많은 학생들에게 쉽고 빠르게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PC통신과 처음 만났다.
결국 PC통신의 매력에 흠뻑젖어 IP사업에 빠져들게 되었고 현재 PC통신 천리안과 유니텔 「아파트관리/하자정보」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아파트 실천학교를 세우고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도 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PC통신도 가르치고 있다. 또 아파트 간에 무상으로 PC통신 전용선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파트 주민을 위한 사이버대학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김용진씨의 노력에 부인 또한 적극적이다. 부창부수랄까.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부인 조영지씨(37)는 구민회관이나 한국문화정보센터 등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무료강좌를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책을 보며 혼자 공부하면서 남편을 돕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이같은 열성 덕에 딸 정아(초등학교3), 수아(초등학교1)도 컴퓨터와 친하다. 수아는 4살 때부터 자판을 통해 한글을 배웠고 언니인 정아는 PC통신으로 친구를 사귀었을 정도.
정아의 경우 숙제도 컴퓨터로 한다. 동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숙제를 능수능란하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연산군묘와 정의공묘에 대한 과제를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는 귀신(?)같은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해 부모마저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다. 이 가족의 할아버지도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 286컴퓨터를 펜티엄급 컴퓨터로 바꾸는가 하면 집안 모두 「내컴퓨터」가 따로 있는 그야 말로 정보가족이다.
현재 김용진씨가 운영하는 PC통신 코너는 수많은 사람들이 열람해 아파트 비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고 있으며 어머니 조영지씨의 컴퓨터 내조는 김용진씨가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단단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두 딸의 일취월장하는 컴퓨터 능력에 김용진씨 가족은 잠시도 쉴 수 없는 컴퓨터 생활속에 묻혀산다. 정보가족이란 명칭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정보화 모범가족이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