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산업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강자들은 새로운 도전자들에 밀려 자리를 내주고 이들 역시 또다른 강자의 출현을 보게 된다.
애플과 노벨. 한 때 내로라 하는 첨단 산업계의 강자로 군림했던 이들도 이같은 「세력 교체」의 대세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각각 컴퓨터 업계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나름대로 아성을 구축했던 이들 업체는 최근 몇년동안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퇴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그대로 주저앉길 거부하고 스스로가 새로운 도전자로 변신,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들이 앞서 왜 퇴락의 길에 들어섰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플과 노벨이 퇴락했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과도한 패권욕이 한 몫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였던 노벨은 문서작성 소프트웨어인 「워드퍼펙트」 등을 앞세워 데스크톱 소프트웨어 시장의 지배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맞서려 시도했다.
애플 또한 PC 시장의 표준으로 정착한 윈텔(MS 윈도인텔)을 대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두 회사 모두 참담한 실패였다.
지난 4년동안 세계 PC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9.4%에서 2.6%로 급속히 감소했다.
노벨도 이 기간동안 의도한대로 데스크톱 분야로 세력을 넓히기는 커녕 오히려 주력 상품이었던 「네트웨어」의 고객 기반을 소홀히 한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5년전 네트워크 운용체계(OS) 시장의 70%를 차지했던 네트웨어의 최근 점유율은 MS의 윈도NT에 시장을 잠식당한 결과, 50%로 주저앉았다.
또 이 기간동안 새로운 영토확장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유닉스와 워드퍼펙트 부문 등을 잇따라 매각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두 회사는 이 과정에서 한가지 공통된 교훈을 얻었다. PC 시장의 지배자인 윈텔에 무리하게 맞서기보다 자신들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재기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말해 MS가 제네럴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면 애플과 노벨은 특화된 시장을 지배하는 스페셜리스트로서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략은 두 회사가 지난해 각각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들어선 후, 한층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노벨 회장에 취임한 에릭 슈미트 회장은 취임초부터 신제품 출하 일시중단과 임원진의 절반을 포함한 대폭적인 인력 감축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혁신을 단행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도 매킨토시 호환전략의 철회와 개인 디지털 단말기(PDA)인 「뉴튼」 사업 포기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새로운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과거의 적이었던 MS를 새로운 협력자로 대하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변화를 보였다.
노벨은 네트워크 접속 제어를 위한 「노벨 디렉토리 서비스(NDS)」의 윈도NT 버전을 개발했는가 하면 애플은 MS로부터 1억5천만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등 예전같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이같은 변화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두 회사 모두 이제 특화된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경영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벨은 네트웨어 새 버전인 「네트웨어5」의 출하를 서두르는 한편, 인터넷 표준인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완전 수용해 나가면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 자리를 지켜간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이와 관련, 최근 이분야 관련 제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애플도 지난해 11월 「파워맥 G3」 기종에 이어 최근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i맥」을 발표하는 한편, OS분야에서도 그동안 개발을 추진해 온 「랩소디」 대신 기존 매킨토시 자원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맥OS X」를 주력 상품화할 것임을 밝혔다.
애플의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새로운 시장 창출보다는 맥의 고정 고객들을 확실히 끌어 안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자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분석가들은 애플과 노벨이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영화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회사 모두 최근들어 분기별 영업실적이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의 영향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