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통신서비스업체인 노던텔레콤이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베이네트웍스를 91억달러에 인수했다.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던 인수설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네트워크업체나 통신서비스업체로선 인수, 합병이 자주 있는 일이라 새삼 놀라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빅딜(?)이 이뤄지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루슨트테크놀로지스사가 유리시스템스를 10억달러에 인수했을 때와는 또 다른 변화인 것이다.
루슨트테놀로지스사가 비동기전송모드(ATM) 전문업체인 유리시스템스를 인수했을 때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인수 자체에 대한 것보다 한국계 기업인이 세운 회사가 고가에 팔렸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이번 노던텔레콤의 베이 인수는 통신업계의 전체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일대 사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먼저 기술적인 변화다. 음성과 데이터가 통합되는 기술추이에 맞춰 공룡기업인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이 네트워크 업체들에 대해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음성통신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통신사업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AT&T의 통신장비사업이 별도로 분리돼 생겨난 루슨트테크놀로지스가 네트워크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유리시스템즈를 인수한 것이나 노던텔레콤의 베이 인수는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스위칭부문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베이네트웍스를 인수한 것은 데이터통신을 강화하겠다는 노던텔레콤의 강력한 의지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네트워크업체들도 이같은 대형인수에 굳이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특별한 기술적 이슈를 만들지 못해 고전하던 업체들로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IMF 상황이나 인도네시아의 모라토리엄 위기, 엔화의 폭락 등 아시아시장의 침체는 네트워크업체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증거는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네트워크 업체가 지난해 하반기 미국의 벤처기업 주식시장인 나스닥에서 주가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같은 변화에 맞춰 앞으로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의 네트워크업체 인수는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 하향세가 지속되고 있는 몇몇 업체의 경우 생존과 시장개편의 차원에서 인수, 합병이라는 새로운 연결구도를 찾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네트워크 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됐고 그 두번째 신호탄이 이번 노던텔레콤의 베이 인수로 굳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에따라 네트워크업체들의 순위경쟁도 치열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네트워크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와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노던텔레콤으로 이어지는 3강체제와 쓰리콤, 케이블트론, 어센드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묶여지는 전문기업의 시장쟁탈전 역시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경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