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가 최근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고용조정에 나섰다. 삼성, 현대, LG 등 주요 전자업체들은 각각 수천명에서 때로는 무려 1만명에 이르는 감원목표를 세우고 이미 실행에 나섰다. 자동차업계에 이어 단행되고 있는 전자업계의 이같은 구조조정은 금융권,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각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용조정과 함께 앞으로 여타 산업계로 확산될 것으로 보여 산업계의 고용조정을 통한 실업사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전자산업계는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위축과 내수경기 침체로 세트업체들은 세트업체대로 불황타개에 안간힘을 쏟고 있으며 특히 세트업체의 경기에 의존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은 더욱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또 지난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하던 수출마저 하반기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은 기업체들로선 사활이 걸린 일로서 어찌보면 불가피한 조치다. 경쟁력이 약한 사업부문은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비전이 있는 부문은 보강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또 오버헤드를 줄여 임금수준을 낮추고 복리후생비를 비롯한 제경비를 줄이는 것은 고금리체제에서 양해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전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면면을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전체 인력의 3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인력을 감원한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대표적인 전자업체인 모 회사는 임원의 경우 50%, 부, 과장을 포함한 직원은 30%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임원의 비중을 크게 줄여야 하는 전자업체들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원을 무조건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발상에는 문제가 있다. 이미 유능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승진시켰는데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그들부터 많은 비율로 감원시키겠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처사라 할 것이다.
특히 올해 초부터 부분적으로 감원을 실시해온 여타 전자업체들도 최근 들어서는 직급별로 일정비율의 대량감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원칙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
감원은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강했던 IBM조차도 80년대에 경쟁력을 상실하자 전세계적으로 10만명 가량을 줄였으며 그밖의 미국 전자, 정보통신 업체들도 엄청난 규모의 종업원을 줄였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업체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들도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이고 감원은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80년대 일본이 전자산업에서 경쟁력이 강해지자 철저한 경영혁신을 통해 먼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조정했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잉여인력을 정리했다. 현재 우리의 전자업체들이 단행하고 있는 일률적으로 50%니 30%니 하는 식의 감원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마치 사람의 키에 맞춰 침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침대의 크기에 맞춰 사람의 키를 자르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전자업체들은 이제부터라도 고용조정에 앞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의 틀을 짜고 그런 다음 그에 맞는 인력규모를 산출해 내야겠다.
자칫 전자업체들의 고용조정이 졸속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현재 1백50만명을 웃도는 실업자에 또 실업자를 더해 가계부문의 몰락을 부채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가계부문은 소비자로서 중요한 경제주체이며 그것이 부실해지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또 전자업체들이 일률적으로 실시하려는 감원은 기업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특히 감원이 대량으로 이루어지면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인적요소에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으며 기업체 내부의 결속을 해치고 사기를 저하시켜 창의성이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또 기업체의 이미지도 크게 실추시켜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자업체들의 고용조정은 그래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도 사회, 기업체, 임직원 등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실시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