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사업을 포기하고 경쟁이 심한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
언뜻 듣기엔 기업체로서 체질화해 있어야 할 이익추구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같은 경영전략 덕분에 지독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사업호조를 보이고 있는 업체가 있다. 일본의 전자부품업체로 잘 알려진 TDK다.
TDK는 96년 당시 잘 나가는 사업과 경쟁이 치열한 쪽 모두 거액의 설비투자가 필요하던 중 경쟁이 치열한 사업에 투자를 집중키로 하고 흑자를 내던 반도체 관련 자회사를 매각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이 결과 TDK는 이후 3년 연속 두자릿수 성장을 구가했다.
TDK는 지난 3월 마감한 98년 결산에서 4천2백57억엔의 매출액을 달성,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경상이익도 4백60억엔에 달했다.
TDK가 이처럼 호조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사업에 투자한 것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요즘 TDK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핵심 부품인 MR헤드 사업이다.
MR헤드 사업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까지는 일부 사업을 포기하는 희생이 따랐다. 흑자를 내던 자회사를 과감하게 매각해 거기서 나온 자금을 자기헤드 사업에 집중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업체에 비해 빨리 양산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TDK는 MR헤드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TDK가 매각한 반도체 자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실리콘 시스템스라는 회사였는데 매각 당시 이 회사는 96년 3월 결산에서 약 4억7백23만달러의 매출액과 1천2백21만달러의 당기 수익을 기록하는 등 안정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TDK가 이런 우량기업을 매각하게 된 것은 이 회사의 아날로그 신호처리 기술을 노린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사가 던진 매수 제의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보다는 그 전해에 세워 놓은 「중점 분야에 투자를 집중시킨다」는 기업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옳다.
TDK는 사실 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련을 겪었다. 92년 3월 결산 때 4천억엔을 넘어섰던 매출액이 93년 3월 결산에서 10%나 낮아졌고 경상이익도 전년도에 비해 43.3%나 감소하는 부진을 보였다.
당시 불황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던 교세라나 롬 등 경쟁업체들의 경영전략까지 분석해 봤다는 TDK는 결국 「사업 선별을 철저히 해 중점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주변 분야는 실적이 좋더라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TDK가 중점 분야로 결정한 것은 자기저항(MR)헤드와 광디스크 등을 비롯한 기록매체, 고주파 부품, 반도체 응용제품 등 4가지였다. 이중에서도 자기헤드의 일종인 MR헤드 사업에 주력했다.
MR헤드는 당시 수요의 중심을 이루던 박막헤드의 차세대 제품으로 기억용량이 큰 것이 특징이다.
사실 박막헤드의 수요가 한창 증가할 때 생산설비 투자시기를 놓쳐 경쟁업체에 뒤진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TDK에는 차세대 제품인 MR헤드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 그동안 내준 시장을 만회해 보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었다.
당시까지 TDK는 MR헤드 사업에 7백억엔대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경쟁업체들을 제쳐놓기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TI에 실리콘사를 5억7천5백만달러의 고액에 매각한 TDK는 매각에 따른 이익금 2백50억엔과 실리콘사에 투자할 예정이었던 자금을 MR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TDK는 실리콘사를 매각한 직후 미국에 있던 MR헤드의 설계, 개발진을 2배로 늘리고 중국에 제2공장을, 필리핀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했다.
이같은 집중투자 전략을 택한 TDK는 94년도를 바닥으로 「V자형」을 그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이같은 개혁을 주도해온 사토 히로시 사장이 상담역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TDK의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사와베 하지메 사장도 당분간은 종전의 「선택과 집중」 경영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자기헤드 업계는 MR헤드에 비해 용량이 큰 거대자기저항(GMR)헤드가 MR헤드를 대체해 나갈 차세대 제품이라고 보고 이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한정된 경영자원을 유효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는 사와베 신임 사장이 이끌어 나갈 TDK의 향후 경영전략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