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여렸지만, 붉은 아침놀이 강화도와 뭍을 구분하는 염하(鹽河)를 가득채운 바닷물을 깨우고 있었다.
찻집. 김지호 실장은 김창규 박사와의 통화내용을 되새기며 연못이 있는 아래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아래 연못에는 이미 진기홍 옹이 연못에 들어가 폐가에서 뜯어온 벽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물에 불어 분리된 요람일기의 내용을 일반벽지와 구분하여 건져내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건져낸 책 조각들이 대나무로 된 소쿠리에 담겨 있었고, 물 빠진 책 조각들은 담벼락이든 나뭇가지든 널만한 곳에 널려져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연못으로 향하면서 휴대폰을 열고 버튼을 눌렀다. 집 전화번호였다.
『아, 당신. 나요.』 『네, 아직도 강화도세요?』 『그래요. 아침나절에나 이곳을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소. 어젯밤 특별한 일 없었지요?』 『네 별일 없었어요. 위성도 이상 없었고요.』 『아이들은 잘 잤소? 며칠 당신과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해 불안했을 텐데.』 『현미가 있었잖아요. 현미가 잘 챙겨주었어요.』 『처제도 충격이 컸을 텐데, 이야기 잘 해주시오.』 『네. 알았어요. 은행에 같이 근무하던 죽은 친구는 오늘 오전에 화장을 한대요. 가족이 아무도 없어 은행직원들만 참석할 거래요.』 『그래요? 처제하고 매우 친했던 모양인데, 참 안타깝게 되었소. 어떻게, 범인은 못 찾았다고 하지요?』 『네. 그 오피스텔 위층에 사는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조사해 보았는데,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대요.』 『당신, 이제 출근 준비해야 될 것 같은데, 오늘 오후에 저녁이나 함께 합시다. 지난번에 약속한 저녁식사요.』 『오늘도 바쁘지 않겠어요? 중요한 일도 아닌데.』 『이제 한시름 놓게 되었소. 지난번에 만났던 곳으로 나와요. 시간은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아이들하고 처제도 같이 나와요.』 『알았어요. 나갈께요.』 은옥과의 통화를 끝낸 김지호 실장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연못으로 들어가 요람일기의 조각들을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진지하게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진기홍 옹의 모습 뒤로 아침놀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젯밤 천진난만하게 쳐대던 종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
그 친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분명 그 친구의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