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68)

송도.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김지호 실장과 김창규 박사는 어렵지 않게 그 친구의 연구실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찰서 조 반장 덕이었다. 아침 일찍 그 친구를 다시 소환하고, 거기서 그 친구의 연구소 주소와 위치를 알아내 알려주었다. 지금쯤 그 친구는 혜경의 장례행사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었다.

연구실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김창규 박사가 출입문으로 다가섰다. 제대로 열릴 것인가. 리모컨. 그 친구의 오피스텔에 있던 것과 같은 기능의 리모컨이었다. 급하게 제작하여 크기와 형태는 달랐지만 거기서 나오는 신호들은 그 친구의 것과 같게 되어 있었다.

오피스텔의 출입문을 열었던 신호로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김창규 박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휴대형컴퓨터를 준비하고 리모컨을 그 컴퓨터에 연결했다. 리모컨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호가 차례로 키 박스로 보내지게 되는 것이다.

『김 박사, 얼마나 걸리겠소?』

『운이 좋으면 곧바로 열리겠지만, 운이 나쁘면 한참 시간이 걸릴 거요. 키 박스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을 다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소.』

『잠깐,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 친구, 죽은 여자의 장례가 끝나면 이곳으로 곧바로 오게 될 거요. 먼저 키 박스부터 살펴봅시다.』

김지호 실장은 키 박스의 버튼들을 살폈다. 3개의 버튼에 손이 많이 타 있었다.

『먼저 이 숫자를 조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신호부터 보내봅시다.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을 것 같소.』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가능한 모든 숫자를 조합할 수밖에 없으니까, 먼저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 거요.』

엔터 키를 누르자 컴퓨터 모니터의 숫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발생 가능한 신호들이 송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중천에 뜬 태양이 조바심을 주고 있었다. 젊은 처녀 장례행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고, 경찰서에서 조 반장에게 이곳 연구실 쪽의 질문을 받았다면 즉각 이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딸깍. 문이 열렸다.

『아, 됐소. 김 실장의 예측이 맞았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요. 다행이오.』

『김 박사,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어떤 것이지요?』

『독수리 칩의 바이러스프로그램을 구동시킬 수 있는 주파수요. 그것을 알 수 있는 회로도를 확보하면 되는 거요. 그래야 일본의 통신망으로 침투할 수 있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