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 국회를 통과해 오는 2001년부터 시행되는 「가전 재상품화 법안」이 일본 가전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자와 생산업체가 폐가전 제품을 재상품화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처리비용 부담을 떠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전제품 회수처리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운영하는 업체들은 계속해서 신장세를 이어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도태돼 가전업계는 한 차례 재편 기간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재 가정에서 나오는 폐가전 제품은 80% 가량을 소매업자가 회수해 가고 나머지 20%를 市, 町, 村에서 회수하고 있는데 그나마 대부분 땅에 매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전 재상품화법안의 세칙은 점차 보완돼 가겠지만 일단은 냉장고, TV, 세탁기, 에어컨 등 4가지 제품이 대상품목으로 정해졌다. 통계에 따르면 이들 4개 품목이 가정에서 나오는 폐가전제품의 80%인 연간 1천8백만대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법안은 소매업자나 생산업체에 몇가지 의무 사항을 두고 있다. 소매업자는 과거에 판매한 제품은 물론 제품 판매시 소비자가 원할 경우 소비자가 사용하던 제품을 회수해야 한다. 또 회수한 제품은 각기 제조업체에 넘겨야 하는 의무가 있다.
생산업체는 소매업자나 市, 町, 村에서 회수해온 자사제품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위한 시설을 적절한 장소에 마련해 법이 정한 비율에 따라 폐 가전제품을 재상품화해야 한다.
일본 가전업계는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가전 재상품화 법안의 취지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나 막대한 처리비용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작용하고 있다.
가전 재상품화 법안에는 원칙적으로 폐가전 제품을 배출하는 소비자에게 재상품화 비용을 부담토록 명시하고 있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불황하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소매업자나 생산업체 측에서는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 넘길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회수비용을 떠 안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日통산성은 재상품화 비율이 50%일 경우 처리비용은 1대당 2천5백~5천엔이 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1만엔을 넘을 수 있다고 보는 업체도 다수 있다.
저가격을 무기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대형 가전 양판점인 고지마의 한 관계자는 『가전제품 한 대를 파는 데 경쟁업체와 백엔 단위의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에 처리비용 전액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고지마는 아직까지 폐 가전제품을 무료로 회수하고 있지만 법 시행 후에는 처리비용의 일부를 고객에게 부담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고지마가 폐기물 업자측에 지불하고 있는 연간 처리비용은 10억엔에 달하고 있다. 지난 3월 결산에서 32억엔의 경영이익을 기록한 고지마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지난해 6월 폐 가전처리 전문 자회사를 설립한 야마다전기의 한 관계자는 『저비용으로 폐 가전제품을 생산업체에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향후 유통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늦어지면 소비세 도입 당시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처리비용 문제는 소매업자뿐 아니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재상품화 비용은 소비자에게 요금을 징수한 소매업자에 청구할 수 있도록 돼있으나 실제로 소매업자에 부담을 강요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생산업체는 제품 설계단계서부터 폐기품 회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뜯어고쳐 재상품화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생산원가를 낮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전업체들은 2001년 법안 시행을 앞두고 가전 재상품화를 위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가전업체와 산업폐기물처리 및 물류업체간의 폐가전 회수, 처리 시스템구축을 위한 제휴도 본격화하고 있다.
소니의 경우 이번 법안 시행 발표를 계기로 지난해 말 TV등 디스플레이 제품의 재상품화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연구소를 본격 운영하고 있다.
마쓰시타전기산업도 지난 3월부터 폐기물 사업자인 사니메탈과 공동으로 TV 재상품화 실증실험에 착수, TV무게의 60%를 차지하는 브라운관을 재상품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쓰비시전기의 경우 산업폐기물처리 전문업체인 닛신산쇼(日新産商)의 내부에 폐가전제품 등을 처리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공동실험에 착수했다.
일본통운도 주요 가전업체 7개사에 폐 가전제품을 가정이나 대리점에서 회수해 제조업체별로 선별한 다음 각 업체의 재생공장으로 운반하는 시스템을 제안하는 등 업체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주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