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LG, "반도체 합병"에 부쳐

 현대그룹과 LG그룹이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합병, 반도체분야의 단일 법인을 설립키로 전격 합의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산업은 그 구도가 크게 재편되게 됐다.

 정부의 사업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단행된 이번 양사의 합병은 몇가지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우선 정부가 당초 사업구조조정의 목표로 삼은 산업의 과잉·중복투자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산업이 과연 과잉·중복투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가격하락이 공급초과에 의해 유발됐고 이에 따라 반도체업체들이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내 채산성이 악화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등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감산을 단행하고 있으며, 일본 업체들은 세계에 퍼져 있는 반도체 라인을 폐쇄하는 등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따라서 두개의 국내 반도체업체를 단일화시킨다는 것은 현재는 차치하고라도 앞으로 과잉투자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또 하나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제3위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현대전자와 6위인 LG반도체가 합쳐져 세계 제2위의 기업으로 떠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세계 제1위인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업체가 세계 1, 2위를 차지함으로써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양사의 합병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이번 합병이 과연 반도체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양사의 통합은 정부가 당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사전에 밑그림을 그려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재벌기업의 과잉·중복투자적인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가운데 빅딜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반도체가 빅딜 대상으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으로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양사를 합침으로써 부채가 10조원이 넘는 거대한 부실회사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나 양사의 공장 가운데 하나를 단순히 폐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지만 반도체 공장의 라인 하나 건설에만도 1조원 이상의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며 또 현대와 LG의 두 반도체 공장은 기술도 다르고 장비도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양사가 통합되더라도 기존의 생산라인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각각 별도로 운영할 수밖에 없고 기껏해야 앞으로 신규 도입하는 설비에서부터나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현재 흩어져 있는 공장을 가동하려면 인력도 현재와 큰 다름없이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기껏해야 관리나 총무·인사 등 간접부문의 인력만 다소 줄일 수 있는 정도여서 고용조정부문에서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번 양사의 통합이 과잉·중복투자를 줄이기 위해서라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반도체 제품이 수출되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설비를 과잉이나 중복투자라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양사의 통합은 자칫 해외시장에서의 마케팅에서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정부의 사업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양사의 통합은 큰 변수가 없는 한 불가피하게 됐지만, 그것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위에서 지적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또 LG반도체와 현대전자 등 해당업체들로선 지분이나 경영권의 향배 등 현안 해결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미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통합하기로 한 만큼 이번 합병이 진정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힘을 한 데 모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