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6)

 『어머니는 잘 모르실 거예요. 뭐, 그런 선배가 있어요.』

 『무슨 일인데?』

 『나보고 자기가 다니는 컴퓨터회사에 들어오래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시험도 안 보았는데 취직이 되었다는 거니?』

 『어쨌든 마음에 들지 않아요.』

 『봉급이 적다니? 컴퓨터 뭐하는 덴데?』

 『뭐, 그런 게 있어요.』

 나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투로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선배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부탁도 하지 않은 취업을 그 선배는 해냈고, 그것은 학창시절에 나에게 보여준 호감과 연관이 있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대관절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컴퓨터를 하면 아주 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일까.

 컴퓨터는 나에게 낯설기만 하였다. 그렇게 흔하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아서 학교 과학실이 아니고는 볼 수 있는 기회도 드물었다. 내가 잘할 것이라는 그 선배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선배의 편지를 받고 고민하는 것은 컴퓨터 그 자체가 아니라, 취업을 거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컴퓨터는 모르지만 가난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고 말할 수 없이 비굴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다. 가난이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부자가 하는 말이다. 가난으로 인해 수치스런 경험을 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위선된 말장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느낀 수치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동안 학창시절에 받았던 수치감도 만만치 않다. 어느 날 학교에 등교를 하고 보면 검은 칠판에 흰 백묵으로 내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나 혼자는 아니었지만, 십여 명의 명단 속에 내가 끼어 있었고, 거기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 명단의 연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이 조회를 하면서, 명단에 나온 학생은 분기별 등록금을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마, 서무실에서 독촉을 해서 마지 못해 적어 놓은 듯했지만, 그것을 보면서 나는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칠판에 이름이 적힌 나는 별개의 존재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우주에서 온 이방인이고, 다른 친구들은 정상인이라는 강박관념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