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통합(SI)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직격탄을 맞고 급격한 위축세를 보인 SI시장이 하반기 들어 공공 부문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아웃소싱 시장의 개화와 이에 따른 외국 대형업체들의 본격적인 진입 그리고 모그룹의 「가지 잘라내기식」 구조조정 분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이같은 환경변화는 상당수 업체에 「존립」 자체를 흔드는 악재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새로운 기회시장을 열어주는 호재 역할도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SI산업은 그야말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IMF가 가져온 투자위축 분위기는 수년간 연평균 40∼50%의 고성장을 구가하던 SI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예산동결은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대형 프로젝트의 규모축소와 발주지연 사태를 가져왔다. 또 국내 상장사의 70% 정도가 졸지에 부실업체로 전락하면서 수주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하반기 들어서도 눈에 띄게 호전되는 기미는 아직 없다. 상반기에 지연됐던 프로젝트들이 봇물처럼 터져줄 것으로 기대됐던 「9월 대박설」도 잠잠하다. 하지만 곳곳에서 감지되는 조짐들은 경기회복의 기대를 갖게 해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실업자 대책의 주요 방안으로 정부가 앞장서 벌이는 공공 부문 정보화 부양대책이 상반기 SI업체를 괴롭혀온 투자위축 분위기 반전에 중심축 역할을 해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또 5개 시중은행 통폐합과 우량은행간 「짝짓기」에 따른 새로운 시스템 수요촉발도 만만치 않은 신규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잇따른 신공항 프로젝트 발주 그리고 2000년 연도표기(Y2k)문제, 지식경영(KM), 전사적자원관리(ERP)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의 부상과 해외매출 가시화도 올 하반기에 이어 99년 상반기 경기 회복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SI업계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시장은 공공 부문이다. 공공 부문은 사업수행이 시급한 SOC·국방 등 굵직한 시장이 상존하는데다 최근 들어서는 대학과 의료 시장까지 급부상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공공 시장은 올 하반기부터 일부 가시화될 아웃소싱 시장까지 포함해 99년 1·4분기에 총 1조5천억원 규모는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 부문도 대다수 업체가 눈독을 들이는 시장이다. 그만큼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5개의 퇴출은행 통폐합 시행과 우량은행간 잇따른 손잡기 등의 금융빅뱅은 프로젝트당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종합정보시스템 수요의 가시화를 가져와 그 어느 때보다 금융 SI시장의 비중을 높여주고 있다.
또 금융권의 주요 현안인 Y2k시장과 기업연금 및 퇴직보험 시장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서 올 금융 시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의 금융 시장은 1조5천억원을 넘어서고 특정 분야별로 10∼20% 내외에서 이뤄지고 있는 금융권 아웃소싱 분위기가 가속화될 경우 2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유통 부문과 제조 부문도 큰 폭의 회복세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올해 각각 1조원이 넘는 시장을 형성하고 99년에는 소폭의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특히 상반기 IMF 충격으로 연쇄 부도사태를 빚은 유통업계는 정부의 유통정보화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정책과 SW공제조합을 통한 경영안정자금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중소규모 위주의 판매시점정보관리(POS) 시장을 주축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내수부진과 긴축예산 운영 등으로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이 가장 두드러졌던 제조 부문도 구조조정을 위한 ERP, 중소기업 위주의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 진출한 법인들의 정보시스템 시장과 환경친화적 시장 등도 제조업체들의 하반기 투자가 불가피한 요소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이같은 낙관론이 대세로 자리잡지는 못한 형편이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IMF정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에는 아직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퇴출기업의 확대와 정부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인한 시장환경의 불안정한 분위기가 여전한데다 외국사의 국내 시장진출로 인한 경쟁심화도 국내 SI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반기 들어 두드러진 모기업의 구조조정 작업 역시 계열사 SI업체들에는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SK그룹의 경우 IBM과 토털 아웃소싱 계약을 추진해 계열사의 전산위탁관리(SM) 시장의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고 D사·H사 등이 미국·유럽계 대형업체들과 인수합병(M&A) 작업을 추진중이거나 공동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SI업계가 최근 눈여겨 보고 있는 것도 바로 해외 유력업체들의 M&A 향방이다. 선진기술력을 갖고 있는 해외 업체들이 국내 업체를 인수해 공공 및 통신, 금융 시장공략의 교두보로 활용할 경우 기존 시장판도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 상당수 대그룹 계열의 업체들은 가장 후유증이 적은 「현실적인」 구조조정 방안으로 해외 업체로의 매각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외자유치라는 대세에도 부합되는 것은 물론 홀딩컴퍼니식의 지주회사로 운영할 경우 회사와 인력 모두를 살릴 수도 있는 처방이라는 판단에서다.
해외 업체들 역시 국내 아웃소싱 선점을 위해서는 전진기지 마련이 시급한데다 요즘처럼 「헐값」에 인수가 가능한 시기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M&A는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이미 국내 SI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한 IBM이나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외에도 지멘스·CSC·HP·왕글로벌·플래티늄테크놀로지·유니시스·록히드마틴 등 10여개의 해외 유력 정보기술(IT)업체들이 꾸준히 물밑활동을 펼치고 있다.
M&A와 함께 아웃소싱은 올해 SI업계에 던져진 최대 화두다. 올 하반기 시장을 회복세로 견인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보화 근로사업이나 은행통합시스템 시장도 사실상 대표적인 아웃소싱 시장의 한 전형이다. 대한항공·SK그룹 등 국내 굴지의 회사를 대상으로 포문을 연 IBM의 선공으로 국내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아웃소싱 시장이 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아웃소싱이 투자위축에 따른 SI시장 침체국면을 타개하는 것은 물론 향후 고성장을 가져다 줄 핵심시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최근 기획예산위를 통해 정부가 밝힌 IT 아웃소싱 과제만도 줄잡아 30여개이고 이미 정보취로사업의 일환으로 올 추경예산을 신청한 정보화사업도 도시지리정보시스템 구축(4백억원), 전자도서관 구축(1백억원), 영상정보 디지털화(2백38억원), 정보화촉진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및 하드웨어 구축(3백25억원), 부동산 등기 전산화(2백억원), 건축물 대장 전산화(50억원) 등 1천3백억원이 넘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아웃소싱이 공공 및 금융 분야에서 경비절감과 함께 인력구조 조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으로 대거 활용될 경우 올해부터 2002년까지 7조∼8조원이 넘는 거대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맞서 국내 SI업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SI시장 판도는 더 이상 국내 업체간 경쟁구도를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발 5대 SI업체나 중견업체들간 편가르기도 무의미해질 전망이다. 해외 업체에 맞선 국내 업체들의 전략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김광호 한국SI연구조합 이사장)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제까지 별다른 특화기술 없이 그룹의 우산속에 안주해온 SI업계의 체질개선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중소업체의 경우 전문분야나 개발기법의 특화 없이는 향후 국내 업체간 컨소시엄에도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대형 SI업체들도 무조건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이제까지의 전략으로는 해외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최근 대형 SI업체들을 주축으로 나타나는 신규 수종사업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의미가 크다. 눈앞에 보이는 시장잡기에 급급한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의 SI산업을 담보해줄 특화사업을 키우는 업계의 노력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현재로선 판단키 어렵다. 하지만 모기업의 해체, 아웃소싱 분위기의 확산, 해외 업체들의 M&A 등 거센 환경변화 속에서 국내 SI업체들의 홀로서기 여부는 바로 이같은 노력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