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3)

 그는 사환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말단 직원이라는 표현을 써 줘도 될 일인데 굳이 그 말을 쓰고 있었다. 약간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대답을 안하고 멈칫하자 그는 자기의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육급으로 들어왔네. 고졸 초봉이 육급이야. 봉급이 많지 않겠지만, 쓸데없는 짓만 안한다면 혼자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쓸데없는 짓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으나 그런 질문을 하면 도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까 보아 입을 다물었다.

 『자네 아직 군대 다녀오지 않았지?』

 『아직 안갔습니다. 올초에 상고를 졸업했습니다.』

 『어떤가? 여기서 일할 마음이 안 드나?』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시켜 주십시오.』

 『좋아. 나가서 사장실로 가 보게. 가서 인사하고 오늘부터 근무하도록 하게. 돌대가리들인 선배들한테 배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선배들이니 잘 융화하도록 하게.』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는 기술실 직원들을 돌대가리라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듣기로는 차장을 비롯해서 김문식과 전태호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했다. 서울 공대 출신이라면 인정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마 실장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지만, 서울대 출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키 작은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학벌 콤플렉스도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위층으로 올라가 사장실 복도를 걸어가면서 배용정에게 그것을 물어보았다.

 『누구든지 콤플렉스는 있게 마련이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상사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파워게임에 조심해야 한다.』

 『콤플렉스 건드리지 말란 말은 알겠는데, 파워게임은 무슨 말이지?』

 『허성규 실장과 이길주 차장은 나이가 같은데, 앙숙으로 지내고 있지. 같은 서울공대 출신인 김문식과 전태호, 그리고 강순익은 차장 편에 붙어 있고, 나하고 양창성은 허성규 실장 패야.』

 『어떻게 그런 파벌이 생기죠?』

 『설명하면 길지만 우선 간단하게 말해서, 이 회사에 들어오게 추천한 사람이니까 그 뒤에 줄을 서게 되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는 이제 내 사람이니 실장패가 되는 것 같군. 열세였다가 이젠 동수가 되었어.』

 나는 이 작은 기술실 안에서 파벌이 갈라져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할 일이 없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