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컴퓨터만 잘해도 되는 대입제도

 지난 36년간 정부 주도로 대학입시가 이뤄져옴에 따라 고등학교는 완전히 대학입시 준비장소로 전락하고 국민들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에 살림이 쪼들릴 형편이 됐다. 80만명의 수험생들이 8시간 만에 같은 시험문제로 입시를 치르게 되니 사지선다식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고 시험 명칭도 그 동안 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 등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다. 80만명의 수험생들을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워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니 대학에서는 학생선발권을 박탈당하고 대학의 서열화는 심각한 단계에까지 오게 됐다.

 정부 주도하의 대학입시가 준 가장 큰 폐해는 고등학교에서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율학습이라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며 3학년 1년간은 완전히 입시준비만 하는 데 그 귀중한 시간을 소비해 왔다.

 이것은 고등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중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초등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시험과정을 통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해방된 기분으로 공부보다 노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며 학생데모로 얼룩지게 됐다. 또한 교육부 전체 예산과 비슷한 사교육비를 국민들이 부담해 왔다.

 그러나 2000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대학입시제도는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도 신입생 선발권을 되찾게 됐으며 수험생 전원을 성적순으로 세우는 일도 없어지게 됐다.

 새로운 입시제도는 본고사나 수능시험 점수에 의해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3년간의 성적과 학교 생활기록부, 추천서, 특기와 과외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대학이 주관적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입시철마다 수험생들이 매달리는 대학의 학과별 「예상합격선」이나 학생의 적성보다는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결정해주는 「진학지도」라는 단어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의 방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새로운 제도가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 과목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라도 전체성적이 좋지 못하면 대학입학이 불가능했다. 외국의 저명한 과학자들도 우리나라에 태어났더라면 대학입시에 낙방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물리를 고등학교에서 택한 적이 없는 학생도 물리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입시제도에서는 컴퓨터나 정보통신 등 한 과목에서 특수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고등학교 학생이 2차대전 때 부당한 이유로 처벌된 한 해군제독에 대한 연구를 해서 해군성이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일도 있었다. 그런 학생은 당연히 대학입시에서 특별배려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성패는 국민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신뢰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렸다. 미국에서는 수능시험(SAT) 성적이 만점이라도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학부모가 대학에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다. 시험성적만에 의해서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추천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선 학교운영위원회와 교장·교사들 간에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한꺼번에 쓰는 것이 아니고 3년에 걸쳐서 써 놓아야 하며 그 학생의 장점과 단점이 골고루 기록돼야 한다. 추천서에도 천편일률적인 좋은 말만 써 놓으면 가치가 없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의 등급제 등의 점수화를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점수화해 온 것이 병폐의 근본이므로 3년간의 성적, 면접시험 결과, 추천서, 각종 경시대회 입상기록, 특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주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학부모의 항의가 있으면 어떤 방법에 의해서 선발이 안됐음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학부모들도 대학의 고유권한을 인정해야 한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2002년부터는 대학입학 지원자수와 입학정원이 비슷해지므로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합격 가능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게 된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말썽이 많겠으나 우리가 꼭 이뤄야 할 개혁 중의 하나다.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