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일부터 미국의 공중파 방송사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고선명(HD)TV 방송을 시작하지만 미국의 HDTV 방송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지난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ABC·NBC·CBS 등 주요 공중파 방송사들과 98년 11월 1일부터 주요 TV프로그램을 디지털로 방송하는 데 합의하는 한편 늦어도 오는 2002년 5월 1일까지 미국 전역의 상업 방송사들은 완전 디지털로 방송하고 오는 2006년에는 모든 방송을 디지털로 방송한다는 디지털 방송일정 세부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FCC의 디지털방송 일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들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디지털방송에 관한 주파수 문제, HDTV 수상기의 판매저조, 공중파 방송사와 케이블 업체와의 의무 재전송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난마와 같이 얽혀 있다.
현재 미 주요 방송사들은 HDTV에 관한 주파수 기술방식에 대해 각 방송사마다 서로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HDTV 방송과 관련된 콘텐츠·칩·PCTV·세트톱박스 사업을 추진중인 정보기술(IT) 업체도 주파수 기술문제에 뛰어들어 더욱 문제 해결을 복잡케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주파수 기술에 관한 문제는 향후의 HDTV 시청률 및 HDTV 프로그램에 제공될 콘텐츠, 세트톱박스, 디지털TV칩, 운용체계 등에 있어서의 사업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방송사와 IT업체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주파수 기술을 개편키 위해 전사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ABC·폭스·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PC 친화적인 순차주사(Progressive Scanning)방식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CBS·방송장비업체 등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비월차주사(Interlaced Scanning)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NBC·인텔·컴팩 등은 이 모두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이같은 HDTV 주사방식에 관한 기술논쟁의 특징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IT업체들은 PC와의 호환성을 위해 순차주사방식 채택을 요구한 반면 공중파 방송사들은 기존 아날로그 주사방식인 비월차주사기술을 고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사와 IT업체들이 각사의 사업 이익을 위해 잇따라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
ABC·폭스·MS는 PC친화적인 순차주사방식을 HDTV 표준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 포맷방식이 디지털TV방송을 손쉽게 인터넷 콘텐츠로 전달할 수 있으며 또한 웹과 TV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기술적 기반이 된다는 점을 들어 이 방식 채택을 주장하고 있다.
MS는 순차주사방식이 채택될 경우 자사 인터넷TV 업체인 웹TV를 통해 본격적인 양방향 TV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월트디즈니의 자회사인 ABC와 머독의 폭스는 이들이 펼치고 있는 인터넷 콘텐츠 사업 및 위성디지털TV 사업과의 연계를 위해 순차주사방식 채택을 방송업계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CBS와 방송장비업체들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비월차주사방식으로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사방식을 변경했을 때 기술적인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 외에 시청자들을 MS 등 IT업계와 경쟁 방송국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인텔은 MS가 주장하고 있는 순차주사방식 지지를 철회하는 대신 모든 TV주파수를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히고 있고 컴팩은 이러한 주파수 논쟁으로 자사의 PCTV 판매가 감소되는 것을 우려, 순차주사와 비월차주사 방식이 통합된 확장된 형태의 주사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고가의 HDTV수상기 가격이 HDTV 상용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소니·필립스 등이 판매하고 있는 HDTV 수상기는 1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또한 기존 아날로그TV로 디지털TV 방송을 시청키 위해 필요한 디코더 가격도 6천 달러에 달해 고가의 가격은 HDTV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 시장조사업체 스탠퍼드 리소스는 올해 26만대의 HDTV가 미국에서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수치는 현재 미국에 보급된 1억2천5백만대에 달하는 아날로그 TV수상기의 1.5%에 불과한 것으로 디지털로 방송할 경우 미국인의 40%가 HDTV 수상기를 구입할 것이라는 지난해의 각종 시장 조사업체의 보고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외에 공중파방송사와 케이블TV업계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의무재전송(Must-carry) 문제도 HDTV 상용화를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의무재전송은 주요 아날로그TV 프로그램을 케이블TV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케이블TV망을 통해 전송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공중파방송사들은 현재 미국 가구 중 68%가 케이블TV에 가입하고 있어 HDTV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날로그 방송에 이어 HDTV 방송도 케이블TV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케이블TV사업자들은 아날로그와 HDTV 방송을 모두 전송하게 되면 HDTV 방송을 위한 여분의 채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몇 개의 채널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광고확보가 어려워지며 특히 기술지원에 따른 금융부담으로 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중파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HDTV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HDTV방송 프로그램 부족도 HDTV 방송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오는 11월 1일 흑백TV가 컬러TV로 전환됐던 것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미국내의 HDTV 방송은 현재 당면한 여러 문제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
<정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