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45)

 내가 이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해서 컴퓨터 원서를 읽는 일이다. 최소한 원서를 읽고 이해할 정도의 어학을 공부하는 데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일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내가 여자에 대해 초연한 것이 같은 방에 있는 학생에게는 신기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형씨는 꼭 도사 같소. 뭘 생각하는 것이 우리와 다른 것 같은데 말이야? 혹시 절에 있다 왔소?』

 『내가 뭐가 다르다는 것입니까?』

 『아냐, 뭔가 달라.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소.』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출하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내 말은 특출하다는 것이 아니고, 도사 같다는 말이지요.』

 『도사가 무슨 뜻입니까?』

 『도사가 도사지 뭐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세상을 다 살아본 그같은 표정이라든지, 여자를 보고도 좆이 서지 않는다든지 하는 특이함 말이요.』

 그것은 틀린 말이다. 나 역시 예쁜 여자를 보면 만나고 싶고, 섹시한 여자를 보면 흥분한다. 세상을 많이 살아본 그같은 표정이 비친 것은 가난한 시절이 나를 단련시켜 놓은 강인한 인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인함은 가난 때문이라기보다 성격 때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복도 건넌방의 여학생 피아노 소리는 이제 그쳤다. 그러자 학생은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말했다.

 『별로 잘 치지도 못하면서 들어왔다 하면 몇 곡조 친단 말이야. 나는 저 여자의 피아노곡 소리를 들으면 흥분이 돼.』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탐욕적이다. 물론 탐욕적인 사람을 한두 명 보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나의 선배 배용정도 얼마나 탐욕적인가. 그들은 모두 어린 데도 이 도시와 함께 병들어 있는 인상을 줄 만큼 진부해져 있었다. 아직은 순수라는 낱말을 찬양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게 여길 수 있는 시기인 데도 그런 조짐은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빨리 늙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도시 탓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해서 컴퓨터 원서를 읽는 일이다. 그날 이후 나는 벽에다가 「타도 영어, 정복 일본어」라는 글을 붙여 놓고 어학 공부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