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인터넷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전문가들은 흔히 「인터넷에 이슈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최근 3, 4년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오던 인터넷에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침묵 속에서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의 발전과정을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등장한 93년까지는 「전문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까지는 인터넷을 통해서는 텔넷·FTP·고퍼·뉴스그룹 등 텍스트와 바이너리파일만 전송이 가능했고, 그나마도 주로 학문적인 영역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93년 웹의 개발이 폭발적으로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던 고성능 멀티미디어PC와 만나면서 인터넷은 「폭발적인 성장기」를 맞았다. 주로 95∼97년간 진행된 이 성장기에 각종 브라우저를 비롯, 자바 등 인터넷 콘텐츠를 좀더 편하고 다양하게 검색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개발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러한 개발 열풍은 급속히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이 인터넷의 침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사용인구는 계속 급속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터넷이 이제 「기술적 발전단계」에서 「문화적 발전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술적 발전단계가 인터넷 사용을 위한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면 이미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도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쉬워졌고, 또 필요한 대부분의 도구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적 도구들을 바탕으로 이제는 어떠한 콘텐츠인가의 문제, 즉 문화의 발전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6천만명이 온라인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이미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이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발전단계로 이전했음은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포털사이트에 관한 업계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란 웹브라우징의 출발점이 되는 사이트로, PC통신을 이용할 때 초기메뉴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말한다.
이미 전세계 인터넷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야후·라이코스 등의 검색엔진서비스, AOL 등 온라인서비스, 웹호스팅서비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저마다 포털사이트를 구축한다는 선언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는 특정한 콘텐츠가 아닌 PC통신과 같은 종합적인 콘텐츠서비스 및 커뮤니케이션서비스를 의미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 사이트를 중심으로 독특한 공동체 문화와 서비스 형식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올들어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 두 가지 큰 흐름이 문화적 발전단계에 진입했음을 표시하는 증거가 되고 있다.
첫번째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터넷 관련법규의 정비다. 이는 작년부터 이미 미국의 통신품위법(CDA) 논란에서 불거져 나왔듯이 기존의 법체계로 인터넷사회를 관리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법의 적용분야도 음란물 등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인터넷활동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인터넷 전자상거래, 인터넷 상표권 등 경제행위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까지 이르고 있어 이미 현실사회가 사이버스페이스를 새로운 사회영역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법제도의 정비는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기능적인 문화의 형성에도 그 이유가 있다. 「미성년자 포르노의 범람」 「정부 등 공공사이트를 해킹해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려는 신종 반정부집단의 등장」 「인터넷을 통한 살인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행위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이버스페이스가 긍정적인 문화와 함께 부정적인 문화도 동시에 갖추게 됐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두번째로는 인터넷의 여론주도 능력이다. 최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이 인터넷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슈화한다든지, 국내의 언더그라운드 웹진인 「딴지일보」 같은 매체가 현실의 언론매체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 등이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밖에도 인터넷방송, 온라인 토론문화, 온라인게임 등 온라인을 통한 각종 문화현상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내년에는 이 같은 인터넷문화 발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인터넷은 더욱 일반화하고 접속환경 또한 고속·안정화하면서 키보드를 이용한 텍스트방식의 문화교류를 뛰어넘어 직접 보고 듣는 새로운 멀티미디어 문화교류 양식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서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느 때나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구정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