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기술 활용방안
기술은 훌륭한 상품이다. 따라서 기술도 시장성이 있어야 한다. 팔리지 않는 기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트워크 장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기술발전의 속도에 맞춰 적기에 기술을 공급해야만 그 가치가 한층 빛을 발한다. 막대한 기술개발 비용을 들여 이미 한물 지난 기술을 개발한다든지, 전혀 상용화와는 관계없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그것은 기술개발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국내 네트워크업체들은 시장의 기술상황에 맞는 기술개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선진 외국 네트워크업체들의 한발 앞선 기술수준에 언제나 풀이 죽었다. 비동기전송방식(ATM)이 그랬고 기가비트 이더넷이 그랬고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에서 개운찮은 뒷맛을 봐왔다. 외국 네트워크업체의 기술력에 언제나 짓눌린 느낌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국내 네트워크업체들의 기술력으로 외국 네트워크업체들을 하루아침에 따라붙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80년대에는 네트워크에 대해 별반 신경도 쓰지 않다가 90년대 들어 비로소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발에 나섰다. 그 사이 외산 네트워크 장비들이 국내시장을 독점하다시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 주도권을 국내업체들이 장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기술지원은 일면 당연하다. 정부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통해 기술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불과 2년 전부터 시작한 네트워크 개발 국책과제가 빛을 보기에는 너무 성급한 바람일 수밖에 없다. 또 시장성을 가미한 기술이라기보다 원천기술 확보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도 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개발후에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현재 국내 기술개발의 현실이다.
기술발전은 국내의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네트워크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매일이다시피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고 업체들은 기술수용만으로도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잠시 방심하면 기존 기술은 사장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국책연구기관들은 원천기술인 칩의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칩기술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기술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용화 기술과 장기적인 원천기술의 개발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시장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개발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대규모 투자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하려는 노력은 인정하지만 기술의 사업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며 『완제품 설계기술도 원천기술인만큼 정부의 국책 연구기관들도 상용화 기술개발에 우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ETRI가 개발, 국산화한 ATM의 경우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 시장이 형성돼 상품에 가미할 수 있는 기술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기업들이 외면한 기술로 그 개발력은 인정받았지만 사업성 면에서 낙제점을 받아야 했다.
ETRI의 이유경 부장은 『기업들의 상용화 기술지원과 관련, 올해초부터 기술지원과 공동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기가비트이더넷 개발을 위해 M사와 공동으로 연구, 올해말이면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나 개발된 기술을 보급하는 데는 공동 연구업체와의 계약관계, 타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한정선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나름대로의 고충을 토로했다.
기술개발에 있어 연구기관과 업체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상호 협조적인 관계냐, 독단적 노선을 주장하는 관계냐는 시장변화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네트워크 장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업체들의 기술개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 조건으로 기술 소유업체가 해외로 이전해 장비를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정부가 체계적인 기술육성에 나서고 있다.
중저가 네트워크 장비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대만 역시 정부연구소가 주요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해 업체에 무상공급함으로써 업체는 장비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를 제치고 수출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업체 스스로 공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