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64)

 『기술실입니다』하는 나의 목소리를 듣자 상대방이 떨리고 가냘픈 음성으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애잔하면서 흐느끼는 듯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희란 버스에서 만난 이후 나에게 도시락을 가져다 주는 음대 작곡과 2학년에 다니는 여학생의 이름이다. 그녀는 2학년이지만, 초등학교 때 한 해 먼저 입학을 했기 때문에 나와 동갑이었다. 이름도 참 예쁘다고 하니까 그녀가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예쁘다는 것이 아니고, 이름도 예쁘다고 했으니, 다른 예쁜 것이 또 있다는 의미였고, 그래서 그녀는 기분 좋아하는 눈치였다.

 『웬일이요?』

 나는 불쑥 말하면서 옆 탁자에 앉아 있는 배용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놀리는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웬일이라니요? 영준씨는 항상 그렇게 퉁명스러워. 내가 전화하는데 웬일이라니? 웬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요? 내 존재가 영준씨에게 그것밖에 안되나요?』

 이게 강짜를 놓네. 벌써 그런 사이가 되었나? 나는 생각했지만, 그녀에게서 얻어먹은 도시락을 생각해서라도 그 강짜를 받아주기로 했다.

 『원 천만에. 전화 줘서 반가워요. 며칠 연락이 없어 궁금했지.』

 『전화 줘서 반갑다는 말도 싫어요.』

 『그럼 뭐라고 해야 해?』

 『우리가 아직도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남인가요?』

 그녀는 곧잘 우리가 남이냐고 물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모호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남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애인 사이라는 뜻이었지만, 나로서는 모호하기 그지 없었다.

 『저, 오늘 저녁에 시간 내줄 수 있죠?』

 오늘 저녁에는 학교 강의를 들으러 가야 했다. 여름학기부터 등록을 하고 다니면서 이제 두어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학적을 둔 것에 회의적이었다.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내가 읽은 일이 있는 미국과 일본의 컴퓨터 관계 원서를 그대로 베껴 자기 주장처럼 강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저녁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오늘 저녁은 결강해요.』

 『무슨 일인데?』

 『학보사에 다니는 친구한테서 연극 티켓을 얻었거든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