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지산업 육성 시급하다

 LG화학·삼성전관·SKC 등 국내 굴지의 업체들이 영국의 AEA를 비롯한 미국 벨코어·에버리디, 일본 아사히카세이 등 10여개 업체로부터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2차전지 특허료 지불을 요구받고 있다는 보도다.

 외국 업체들은 또 2차전지 판매대금의 2∼5%를 특허료로 내놓을 것을 주장하고 있어 그들의 요구 대로라면 향후 5∼10년간 물어야 하는 특허료는 업체당 최소한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전지사업에 참여한 지 수년 만에 가까스로 제품을 생산하려는 시점에 외국업체들이 특허료를 요구하고 나선 점이 주목거리다. 그것도 한두 업체가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미국·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업체들이 특허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용의주도함을 지나 섬뜩하기조차 하다.

 수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제품을 개발, 이제 양산하려는 기쁨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린 것은 말할 것 없고 이번 사태에 직면한 적지 않은 업체가 당황하고 위축돼 있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같은 충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이번 사태를 차분히 수습하는 한편 이 사건의 교훈을 통해 앞으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세워야 하겠다.

 먼저 이번 일은 첨단 기술산업에 대한 원천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차전지는 첨단 정보통신기기에 사용되는 부품으로서 시장 규모도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그 성능이나 크기 등 특성이 세트 제품의 경쟁력을 가름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이를 일찍이 인식해 기술개발을 서둘렀으나 우리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선진국에 비해 원천 기술이 뒤져 있는 우리는 언젠가는 특허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이번에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외국 업체들과 협상을 통해 특허료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허를 침해했다면 아무리 협상을 잘하더라도 관례에 따라 일정금액의 특허료는 지불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원천기술을 배양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특허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나 LCD·휴대폰 등 첨단 기술 제품은 거의 예외없이 거액의 특허료를 지불하고 생산을 하는 게 우리의 관행처럼 돼 버렸는데 언제까지 그렇게만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선진업체들의 견제에 배겨나기 어렵고 제품원가도 높아져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로케트가 미국 질레트에 판권을 넘겨줘 버림으로써 국산 브랜드가 붙은 1차전지 제품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우리는 2000년대 2차전지가 유망산업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이번 전지 특허료 분쟁을 계기로 전지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다시 한 번 다져야 겠다.

 특히 리튬이온전지 이후의 차세대 제품 개발은 시급한 과제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제품개발 계획을 수립, 자체 특허확보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정부도 우리 업체가 필요하다면 외국업체와 기술제휴나 합작을 통해 선진기술을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업계에 대한 지원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소망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우리가 전혀 보유하고 있지 못한 전지 생산설비 기술 확보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전지관련 플랜트를 수입하거나 기술도입을 추진할 경우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겠다. 장기적으로는 장비기술이 곧 제품기술이라는 점을 깨달아 장비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