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에 대한 꿈은 단순하면서 적극적인 것이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적어도 같은 사무실의 선배들보다는 더 훌륭한 기술자가 될 것이라는 점은 자신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언젠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상품을 만들 것이다. 그때 나는 막연하나마 미국 벤처기업의 전설적 인물 세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MITS를 창업한 빌 게이츠와 에드 로버츠,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의 선배이며 동업자인 폴 앨런이었다. 나는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될 것이다. 그리고 폴 앨런 역은 선배 배용정에게 맡기자. 이 막연한 공상은 몇 년 후에 실제 상황이 되었다. 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고 그때 배용정 선배와 동업관계로 함께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직원들이 도시락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다희를 만났다. 그녀의 외모라든지 분위기는 도시락이라는 별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직 나에게 도시락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로 해서 얻은 별명이었다. 도시락과 나는 아니, 다희와 나는 「3.1로 창고극장」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 극장은 정말 창고처럼 생긴 허술한 곳이었지만 단막극이나 1인극 위주로 하는 당시 연극계에서 유명한 소극장 중의 하나였다. 다다미를 깔아놓은 바닥에 앉아 바로 앞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의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가까이에서 연극을 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감흥을 주었다. 연극 자체의 성취도는 나로선 알 수 없었지만 추송웅이라는 배우가 나와 1인극을 했는데 그의 표정이며 감정의 전이는 놀라울 정도로 기발하고 감동적이었다. 가까이 있어서 그의 숨소리나 가냘픈 호흡 소리마저 듣고 느낄 수 있는 데에 소극장의 특징을 알듯 했고 연극 팬들이 소극장을 찾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움찔 놀란 것은 나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을 때 놀라면서 당황하는 기분이 있는데 바로 그런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싫지 않아 그녀가 내 손을 놓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나는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연극을 보았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관객석도 무대와 마찬가지 형태였다)에 환한 불이 켜졌을 때 우리는 손을 놓았는데 그때 손바닥에 땀이 배어 끈적거리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땀이 배었는지 축축했는데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내 손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