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재벌을 중심으로 한 그룹사들의 빅딜 윤곽이 드러나면서 「생존」을 위한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SI업체들의 경우 모기업이나 계열사의 구조조정 향방에 따라 시스템위탁(SM) 물량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구조조정은 그룹차원에서 맨 마지막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자구방안을 찾기 위한 국내대형 SI업체들의 움직임은 가히 필사적이다. 무엇보다 외자유치를 통한 홀로서기가 가장 많고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M&A나 엉뚱한 짝짓기로 생존을 모색하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외자유치는 사실상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나 모 그룹을 설득하는 묘수라는 점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다.
데이콤에스티가 지난 9월 경영권을 과감하게 포기해가면서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및 외국 파이낸싱회사로부터 모두 7천만 달러의 외자유치를 성공시킨 것이 좋은 예다.
또 최근 국내 제일의 SI업체인 삼성SDS가 CA나 HP로부터의 외자유치를 위해 유니텔을 주축으로 한 정보통신서비스업체의 분사를 유보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여기에다 쌍용정보통신이 프랑스의 컨설팅업체를 통해 외지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금융SI에 주력해온 D사도 최근 국내에 진출한 왕글로벌에 지분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정보네트웤도 모기업인 한국전력과 망사업이관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완료될 경우 외자유치를 이른 시일내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외자유치가 현 기업환경에서 홀로서기를 위한 최선책이라면 계열사간 짝짓기는 거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우정보시스템은 지난 10월중순 그룹 계열사인 대우모터공업에 흡수합병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자신들보다 외형이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고 아이템 성격이 전혀 다른 모터와의 합병을 받아들이는 당시 업계 주변의 분위기는 숙연하기 조차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우전자가가 삼성으로 넘어가는 빅딜로 인해 여의치 않게 됐다. 대부분의 계열사 SM를 책임지고 있는 대우정보시스템을 경쟁사인 삼성으로 넘겨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진행된 모터와의 합병은 결국 공시 1달여만에 다시 무산됐다. 이에 따라 분사로 방침을 선회한 대우정보시스템의 앞날은 전격적인 외자도입 없이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중순 사업유관성이 거의 없는 LG-LCD로 합병된 LG소프트도 비슷한 처지다. 반도체 빅딜의 파편으로 발생한 LCD사업 보호막으로 LG소프트가 이용됐을 뿐 SI사업 강화와는 전혀 무관한 합병이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비하면 최근 그룹계열사인 대한텔레콤을 인수당하는 방식으로 합병해 SKC&C으로 새롭게 출범한 SK컴퓨터통신의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다. 비록 대한텔레콤과의 사업유관성은 적으나 이번 합병으로 그간 IBM과의 M&A설을 잠재우는 효과는 물론 재무구조개선이라는 두마리 토기를 잡았다는 평가다.
이밖에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로 넘어간 후 분리매각이나 별도법인으로 남는 방안을 고민하는 기아정보시스템 등도 그룹간 빅딜이 남긴 SI업계의 상흔으로 꼽힌다.
<김경묵기자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