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결과적으로 대외신인도만 떨어지게 됐다.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가 우여곡절 끝에 1년 유예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을 현행 33%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49%까지 확대(한국통신 제외)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한 결과, 확대시기를 1년 유예해 오는 2000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99년 1월 시행을 약속하며 외자유치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던 정부의 대외신인도에 대한 타격은 물론 외자유치에 나섰던 기간통신사업자들의 부담가중 등 또다른 후유증까지 예상된다..
기간통신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 시한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제동으로 유예된 것은 그동안 정부 차원의 99년 지분확대 발표가 구두선에 그쳐 외자유치 전략에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외자유치에 나섰던 일부 기간통신사업자들은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내년부터 외국인 지분한도가 49%로 확대되는 것을 전제로 외국업체의 투자를 유치한 업체의 경우 시행시기가 1년 유예됨에 따라 우선주에 대한 배당률이 훨씬 높아져 44억7천여만원을 해당 외국기업에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지분확대는 국가의 대외신인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사안으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국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면 아예 외국인 지분 조기확대를 공언하지 말든지 아니면 관철을 시켰어야 했다.
물론 정부원안 통과를 주장하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완승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타협점을 찾았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그나마 다행이라는 위안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또다른 후유증을 동반한 예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감안하고 외자유치를 조기에 성사시키기 위해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을 오는 2001년부터 49%로 확대키로 한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협정을 자발적으로 2년 앞당긴다고 약속한 게 바로 정부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눈에는 국회의 반대에 부딪친 정부의 약속 불이행이 자가당착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어 명분과 실리를 다 잃었다는 게 외국 투자자들의 분석이다. 이번 외국인 지분확대 유예로 정부와 여당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가 입을 국제적인 손실도 계산했어야 했다. 좀 성격이 다르긴 해도 이번 외국인 지분확대 유예건은 IMF가 지난해 IMF체제로 갈 당시 우리 정부가 믿기지 않아 3당 대통령후보의 각서까지 받아낸 전례를 생각나게 한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간에도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처음부터 해서는 안되는데 하물며 국가가 신뢰도에 금이 갈 정도로 허황을 부린 셈이니 보통 큰일이 아니다.
정치권도 각성해야 한다.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를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사실 지난 여름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외국인 지분한도 부분만은 의원입법 형식으로 통과시키자는 여야 의원들의 요구로 이번 정기국회에 넘어온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원안통과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물론 정치권의 반대 시각에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간통신회사들이 헐값에 팔리거나 경영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통신주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또 국회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분확대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굳이 「1년 유예」에 무게중심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1년 유예」로 통신주권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유예결정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제는 우리 정치권도 세계의 변화추세에 맞게 새로운 가치체계, 새로운 사상체계로 중무장해야 한다. 국가가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데 정치권이 방해가 돼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