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73)

 『오늘 찾아뵈어도 될까요? 자료실에 원서가 많다고 해서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래요, 오시오. 다른 책은 몰라도 컴퓨터 관련 원서는 많이 있어요.』

 나는 하숙집에서 나와 홍릉으로 갔다. 전자통신연구소는 KIST와 함께 있었다. 그는 시일을 다투는 어떤 연구 때문에 휴일에도 나와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통신연구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 알 수는 없었으나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라는 인상을 주었다. 술이 깨지 않았다고 말했듯이 그의 입에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났다. 무슨 술을 마셨는지 말을 할 때마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KTRI는 작년 12월 10일에 각하의 이름으로 설립되었지요.』

 그는 나를 데리고 연구소 안을 안내하면서 말했다. 연구소를 견학시킨다고는 했지만 별로 볼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통신기기와 컴퓨터실은 보여주지 않았다.

 『전송, 교환, 통신시스템 등 세 분야로 나누어서 연구를 하고 있어요. 내가 맡고 있는 것은 교환이지요. 전자교환기 도입과 개발은 66년 출범한 전기통신연구소에서 추진돼 왔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요. 72년 KIST에서 컴퓨터에 의한 교환시스템이 연구됐고 그후 74년 전자교환방식 연구부가 구성됐다가 75년 각하가 특별지시를 내려 전자통신 연구소가 설립됐던 것이오. KIST 부소장이던 정만영씨가 연구소장이 되었지만 소장만 있을 뿐 연구원도 없이 있다가 한 해 전에 팀을 만들어 발족이 되었지요. 일년 동안 우리가 맡은 것은 국책사업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아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는 있지요. 도서실로 갑시다. 무슨 책을 원하오?』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서적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물론 많이 있지요. 이리 오시오.』

 그는 나를 데리고 본관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여자 한 명이 내려오다가 한성우를 향해 목례를 보냈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농구선수를 연상시킬 만큼 키가 크고 매우 세련된 인상을 주었다. 다만 눈에 기름기가 있어 번쩍이는 것이 특이한 인상을 주었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서 한성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내려간 홍 박사는 내 조수로 일하고 있소.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전임은 못하게 되었지만 특강은 할 수 있지요. 도서실 주임이기도 한데 인사를 시켜드릴 것을 그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