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해 들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투자체제 조정에 적극 나선다고 한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설치를 계기로 전체 과학기술 연구개발비에서 국가가 분담하는 비중을 현행 20% 수준에서 중장기적으로 선진국 수준인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현재 정부부처간 중복되고 분산된 R&D 투자 등 지원정책을 체계적으로 조정해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고 한다.
21세기 지식기반산업시대에는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따라서 과학기술 개발에 정부의 역할 강화가 시급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방침은 적절한 방향설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행정부 개혁작업의 하나로 추진중인 정부부처 경영진단 작업이 중간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사실 R&D 투자의 효율성 제고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과학기술 투자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수요지향적 기술개발이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명제로 강조됐으나 아직까지 국가 R&D사업이 민간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과학기술계를 혹독한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 작업이나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종합 조정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설치는 효율적인 자원배분과 연구 효율화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해 추진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또 기업들이 IMF 관리체제에서 R&D 투자를 우선적으로 줄이고 있고 연구인력도 대폭 감원하는 등 그동안 국가 R&D 투자를 주도해 온 민간부문의 연구개발비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민간부문에 대한 기술개발 지원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가 R&D 투자체제에 대한 수술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현재 상태로는 21세기 지식기반산업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나 인력은 외형적으로는 손색이 없다. 90년부터 97년까지 우리나라 R&D 투자는 연평균 21.7%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2.9%로 미국(2.5%), 일본(3.0%) 등과 엇비슷하다. 또 우리나라 R&D 투자지표도 투자액의 경우 세계 7위, 연구인력 수는 세계 9위에 올라있다.
그러나 연구원 1인당 특허등록 건수는 선진국의 15∼40% 수준이며 인구 10만명당 특허등록 건수는 대만과 싱가포르의 25∼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특허·기술집약 제품 수출액, 연구개발 투입액 등을 지수화한 기술개발력 지수는 미국을 1백으로 했을 때 6.6에 그친다. 그 결과 기술수출에 비해 기술수입이 월등히 높아 부가가치 면에서 선진국 기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실정인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R&D 투자체제 조정 방안은 국가 R&D 투자경로를 부문별로 단일화해 중복투자에 따른 비효율을 제거한다는 복안이다. 한마디로 현재 산자부·정통부·과기부 등으로 나뉘어 있는 국가 R&D 투자 관련부처를 산업기술 부문과 교육연구 부문으로 구분해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 부처의 순수 R&D 분야와 교육부의 대학교육 기능을 합쳐 「미래부」로 통합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안들은 모두 현재 과학기술정책 조정기능이 취약하고 연구소간 체계적인 역할분담이 미흡하며 개발자와 수요자간의 연계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안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아직 진행중인 점을 감안, 관련부처의 통합과는 별도로 연구개발비의 집행에 앞서 중복투자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부터 출범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예산·경제정책·외국계 컨설팅업체 등 정부부처 및 외부 전문가들을 모아 과학기술 예산을 사전에 조율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외국 전문기관 등에 사후평가를 맡겨 연구개발비가 유실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 정부의 R&D 투자는 실패의 위험성이 높은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하고 대신 실용화 단계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협조하도록 역할분담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연구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제도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