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빅딜이 전격 성사되면서 그 여파가 통신시장 구조조정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동안 물밑에서만 논의되던 통신산업 구조조정이 엉뚱하게 반도체 빅딜이라는 요인에 의해 수면 위로 급부상,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 전망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반도체를 포기한 LG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 즉 일종의 보상빅딜을 요구하고 이것이 현대와의 협상과정에서 실현될 것인가이다. 그 다음은 현대와의 관계를 무시한 채 LG 자체적으로 통신시장 새판짜기에 나설 가능성이다. 마지막으로는 과연 이같은 통신 구조조정이 마무리된다면 향후 국내시장이 어떤 구도로 변모할 것인가이다.
특히 LG가 반도체 포기를 선언한 직후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이 『전자·정보통신을 그룹의 핵심역량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통신시장 구조조정과 관련, 의미심장하다. LG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룹차원에서 유무선통신서비스 및 단말기 교환기를 비롯한 장비까지를 수직 계열화한 종합 정보통신회사 육성에 초점을 맞춘 그랜드 플랜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통신시장 구조조정은 LG가 현대와의 협상과정뿐 아니라 기존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지분조정 등이 입체적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LG가 현대와의 협상에서 통신분야와 관련해 무언가 받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현대가 갖고 있는 온세통신(약 30%로 추정)을 비롯, 기간통신사업자 등의 지분을 넘겨받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LG는 이미 자체 보유중인 지분과 현대의 지분을 합쳐 이들 기간통신사업자의 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LG가 그렸던 종합 정보통신회사로 가기 위한 진일보인 셈이다.
더욱이 반도체를 포기한 LG에 그에 상응한 선물을 제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정부는 물론 재계에까지 확산될 경우 LG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는 한전 등 공기업이 갖고 있던 기간통신사업자 지분도 인수해 사실상 후발 유선 기간통신사업자의 맹주자리를 차지하는 그림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걸림돌은 남는다. LG가 개인휴대통신사업권을 따낼 당시 정부와 약속한 데이콤 지분 5% 한도문제다. LG는 제2의 기간통신사업자인 데이콤의 사실상 최대주주(업계에서는 30% 이상으로 추정)이면서도 이같은 약속 때문에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데이콤은 하나로통신의 대주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LG로서는 이 약속만 파기된다면 데이콤과 하나로라는 시내·시외·국제전화 사업자를 통제하는 위치에 설 수 있다. 이제는 반도체 빅딜이라는 상황변수가 발생, LG가 이를 백지화해주도록 정부에 요구할 공산도 있다.
어찌보면 통신시장 구조조정의 출발점이 바로 데이콤에 대한 LG의 지분한도 약속이다. 이 고리가 풀리면 주주사들간에 자연스런 지분의 양도·양수가 가능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주무장관인 남궁석 정통부장관이 당시 LG와 경합을 벌였던 삼성현대 연합군인 에버넷 사령탑이었고 LG의 데이콤 지분문제를 제기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정보통신업계 구도는 대표사업자 한국통신(KT)과 SK텔레콤, LG의 거대한 3자 구도로 굳혀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통신시장이 이들 3강을 중심으로 기존 유무선 역무한계를 초월한 종합 정보통신회사체제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