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이솝우화에 포도밭의 보물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한 부지런한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다. 아들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같이 모두 게을렀다. 농부는 나이가 들수록 그 아들들이 걱정됐다. 세월은 흘러 농부는 늙고 병들어 눕게 됐다.
어느 날 농부는 아들들을 모두 불러 들였다. 『이제 나는 곧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감추어둔 보물을 나누어 주려고 한다. 사실은 저 포도밭에 귀한 보물을 숨겨 놓았으니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모두 파내어 쓰도록 해라.』
며칠 후 농부가 죽자 아들들은 당장 포도밭을 구석구석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들들은 계속해 흙을 열심히 파고 샅샅이 뒤졌다. 그리하니 땅은 기름지고 포도나무는 잘 자라게 됐다. 날이 갈수록 많은 포도송이가 열렸다. 그제서야 아들들은 아버지가 말한 보물의 참 뜻을 깨닫게 됐다.
사실 오늘날 경제난국의 원인은 지난 30여년 동안의 지속적인 고속성장에 있지 않았나 하는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 60년대 군사정부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면서 우리 경제의 중심을 재벌기업에 둠으로써 오늘의 난국은 잉태됐던 것이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하에서 정부의 재벌 감싸기와 금융특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누군가 정권에 줄을 대고 사업권을 따내면 자기자본의 몇 곱절이나 되는 자금을 대출받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국민정서는 멍들어 갔고 윤리의식은 실종돼 갔다.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됐고, 질서의식과 윤상(倫常)의 법도는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월남참전에 따른 군수특수 및 중동건설붐과 환율·국제금리·유가 등 3저 현상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도성장의 궤도에 오름으로써 이러한 불합리한 요인들은 성장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
지금이야말로 질서와 윤리의식을 되찾고 땀흘리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정당한 경제논리를 세워야 할 때인 것이다. 모름지기 선진국이라 함은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이러한 질서와 윤리의식이 서 있는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방안은 국민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저비용 고효율 산업」을 육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일컬어 정보사회라고 한다. 21세기도 정보사회가 지배할 것이다. 정보사회의 핵심산업인 정보통신과 소프트웨어, 이 두 개의 바퀴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을 실현하는 중심산업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 분야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을 만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분야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낙후돼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전세계 소프트웨어산업의 70∼80%를 점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겨우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이 기기 소프트웨어, 시스템통합(SI) 소프트웨어분야를 맡고 있으나 패키지 소프트웨어분야는 중소기업에서 해내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에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뛰고 있다. 바로 이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는 어느 한 기업, 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를 가까이 하여 취미를 갖게 하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며, 대학에서는 세계로 눈을 돌리는 프로세스가 필요한 것이다.
자질 있는 젊은이를 발굴해 내고 밀어주고 키우는 일은 국민·기업·정부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번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수명이 6개월에서 길면 1년이라고 볼 때, 계속해서 상품가치를 지니려면 「버전 업」 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마케팅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공은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명품은 장인의 손에 의해서만 빚어지는 것이기에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고 도예촌을 운영하며 도자기를 시장에 내다 팔게 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소프트웨어가 나와야 한다. 한국의 빌 게이츠를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보물은 땅 밑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헤치는 일이다. 우리의 의식·생활·환경 등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 있는 토양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