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자의료기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전자혈압계, 초음파 영상진단기, X선 촬영장치, 레이저 수술기는 이미 디지털 제품이 출시됐으며 여타 전자의료기기의 디지털화도 급진전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처럼 국내 전자의료기기업계가 아날로그 방식에서 탈피, 진단의 정확성이 높고 의료영상의 질이 우수한 디지털 전자의료기기 개발에 나선 것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전자의료기기 시장을 주도해 오던 아날로그 기술은 20세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1세기에는 디지털 전자의료기기가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디지털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당연히 도태된다. 전세계 전자의료기기업체가 디지털 기술확보에 안간힘을 쏟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표적인 전자의료기기업체인 메디슨이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도시바, 네덜란드의 필립스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흑백에서 컬러, 2차원에서 3·4차원, 보급형에서 중·고가형까지 디지털 초음파시스템을 완벽히 구비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더욱이 초음파 영상진단기 관련기술이 GE와 지멘스 등 선진업체들보다 2∼3년 이상 앞섰다니 디지털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21세기에 대한 기대가 크다.
또한 한국전기연구소·한국과학기술원·동아엑스선기계·삼성전자 등 산·학·연이 힘을 합쳐 디지털 X선 촬영장치(DR:Digital Radiography) 개발에 나선 것도 전자의료기기산업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들린다.
방사선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도 촬영 즉시 판독할 수 있는 디지털 X선 촬영장치는 방사선 피폭량이 적으면서도 해상도가 뛰어나고 이미지 프로세싱이 가능해 조만간 아날로그 장비를 전면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크지 않아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DR 생산국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후발업체가 출력을 효과적으로 제어, 수술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이산화탄소 레이저 수술기를 출시하면서 불붙기 시작한 디지털 레이저 수술기 개발경쟁도 치열하다.
위상제어방식을 채택, 시스템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아날로그 제품이 조만간 디지털 레이저 수술기로 대체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병원용 고가 장비뿐 아니라 가정용 소형 장비의 디지털화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전자혈압계의 경우 이미 전 품목이 디지털화됐으며 보청기와 적외선 체온계도 디지털화에 성공했다. 글로벌화되는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자의료기기업계의 노력이 디지털 전자의료기기 개발이라는 쾌거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어렵게 개발한 이들 제품이 내수 및 수출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신규 업체의 진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자의료기기가 자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국가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내수시장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병원이 성능과 품질이 검증된 유명 제품을 선호함에 따라 국내 업체가 개발한 신제품이 설 땅은 거의 없다.
그러나 문턱이 높은 만큼 시장규모도 크다. 전자의료기기산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역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전세계 모든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자의료기기다.
물론 업체의 노력만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차세대 전자의료기기 개발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고 외산 전자의료기기와 마찬가지로 국산 전자의료기기도 리스 구입이 가능하도록 할부금융회사를 설립하는 것 등이 정부가 할 일이다.
힘들게 싹을 틔운 디지털 전자의료기기가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획기적인 전자의료기기산업 육성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