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네트워크업계 사상 최대 빅딜이 이루어졌다. AT&T의 통신장비 자회사인 루슨트테크놀로지스사가 원거리통신망(WAN)부문의 강자인 어센드커뮤니케이션사를 2백억달러에 전격 인수한 것이다. 지난해 중순 노던텔레콤이 베이네트웍스를 90억달러에 인수한 것보다 더 큰 규모다.
이번 사건은 최고 금액의 인수라는 점 이외에도 네트워크업계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줄곧 데이터통신부문에 눈독을 들여오던 루슨트가 어센드를 인수함으로써 네트워크부문 풀라인업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루슨트는 그동안 음성통신장비부문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기술변화가 데이터통신으로 흐르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에 부심해왔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지난해 유리시스템스를 비롯, 랜넷 등 유수 네트워크 기업을 대거 인수했다. 루슨트의 지난해 인수기업은 18개로 그중 11개가 네트워크 업체라는 점을 볼 때 이 회사의 데이터통신에 대한 투자전략의 강도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어센드 인수는 그동안 근거리통신망(LAN)분야에 치중하던 인수작업을 WAN분야까지 확대함으로써 네트워크 전분야에서 선두기업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2백억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거액을 들여 인수작업을 펼친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루슨트가 네트워크 전분야에서 풀라인업 구축을 강행하고 있는 데 대해 업계에서는 시스코시스템스를 강력히 견제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전세계 라우터시장을 석권하면서 네트워크업계 최강자로 독점적 지위를 향유해오던 시스코시스템스에 네트워크 전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차지해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2005년 이후 데이터통신이 음성통신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통신부문업계 1위의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자존심 싸움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시스코시스템스의 데이터통신부문의 선점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정보기술(IT)시장에서 루슨트와 시스코의 기업가치 평가는 자산과 매출면에서 루슨트가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시스코의 기업가격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루슨트의 어센드 인수는 불안한 미래예측에 대한 보안적 장치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인수설 초기 1백30억달러 선에서 거래금액이 오갔으나 막판 2백억달러에 결정된 것도 이같은 상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또 최근 루슨트는 시스코 임원들을 대거 영입하는 등 루슨트의 시스코 견제가 심해지고 있어 앞으로 네트워크업계에서 이들 두 업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네트워크시장 역시 루슨트와 시스코 양분체제의 변화가 예고된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토털솔루션으로 시장을 급속히 확대해가고 있는 한국쓰리콤의 경쟁이 가해질 경우 국내시장은 3파전의 뜨거운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들 업체의 기술적 우위전략은 국내 네트워크기술 발전에도 고무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사의 한 임원은 『루슨트와 시스코의 전략이 다른만큼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시스코가 네트워크 전문기업이라면 루슨트는 통신 종합사로서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기존 「혁신(revolution)과 진화(evolution)」 정책에 이상이 없음을 시사했다.
한편 루슨트는 어센드의 직원들을 대부분 고용승계할 것으로 예상돼 어센드코리아 역시 별다른 인사이동없이 루슨트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