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대가 사주팔자에 의해서 형성된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서 지극한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좋은 사주팔자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수시로 거의 틈만 있으면 나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그 기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한다거나 절에서 부처님에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길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마음속으로 했다.
집에서 냉수를 한 그릇 떠놓고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물은 일이 있다.
『엄마는 누구에게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네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누구에게요?』
『삼신 할매에게.』
『모시는 신이 그렇게 바뀌면 어떻게 해요? 절에 가서는 부처님에게 기도하다가 교회에 가서 예수님에게 하시더니, 이제는 삼신 할매에요? 그렇게 두루두루 신을 섬기면 오히려 신들끼리 질투가 나서 안되면 어쩌죠?』
『정성이 지극하면 그 어떤 신도 거절을 못하신다.』
아들에 한해서 어머니에게는 어떤 초인적인 영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에서 하숙을 하는 동안에도 몸이 아프거나 심기가 불편할 때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온다. 몸살에 걸려 직장을 하루 쉬었던 날 밤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 어디 몸이 아프니?』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괜찮아요.』
『사람은 건강이 최고란다. 몸이 중요한 거야.』
『내가 왜 아프다는 생각을 했어요?』
『꿈자리가 이상해서 그냥 물어본 거다.』
어머니가 가져온 반찬은 그날 하숙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어머니는 반찬을 따로 보관했다가 나만 먹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숙생활을 청산하고 자취를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반찬을 보자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가정교사 자리를 잃은 나는 다시 책을 살 돈이 없었던 것이다. 월급을 타야 하숙비와 교통비를 제하면 별로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