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98)

 연구실에는 양창성과 나만 남았다. 이길주를 포함한 세 명의 직원들이 떠나고 배용정이 군에 입대하고 나자 두 사람만 남은 것이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이제 대학을 갓 나온 기술자들은 연구소를 비롯해 새로 생긴 컴퓨터 회사에서 먼저 데려갔다. 기술자들을 전혀 구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현장에서 실습을 했던 경험자와는 달랐다. 허 실장은 연구실로 들어와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우리가 개발하던 통신제어장치를 완성시키지 못할 것 같으면 우리 회사는 존재이유가 없어지는 거야.』

 허 실장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회사를 폐쇄시킨답니까?』

 내가 놀란 어조로 물었다. 어렵게 취업을 한 나로서는 1년을 채우고 그만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배웠던 컴퓨터에 대한 매력을 떨칠 수 없었다. 다른 기술자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학벌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컴퓨터 회사에서 인정해줄지도 의문이었다.

 『개발이 어려우면 업종을 바꾸라는 오너(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듯해. 최 사장이 매우 난처해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데 나로서도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통신제어장치 개발은 미국에서는 이미 성공했어요.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죠. 그냥 포기하면 안됩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시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허 실장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나 그의 입술이 약간 비틀어지면서 미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나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말을 이었다.

 『한성우씨의 얘기를 들으니 KTRI(한국통신기술연구소)에서도 114 번호 안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르지만 결국 오십보 백보 차이입니다. 불가능할 것도 없죠.』

 『한성우가 누군데?』

 『이길주 차장의 친구분인데, KTRI의 연구원입니다.』

 『이길주는 말도 꺼내지 마. 그놈은 기술자들을 몽땅 데리고 태양컴퓨터로 갔어.』

 태양컴퓨터는 라이벌 회사로 외제 컴퓨터를 조립해서 팔기도 하고 전화 통신관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어쨌든 제가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