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교에서 전인교육을 위해 다양한 수업을 실시했다. 학생은 오리·말·원숭이. 먼저 수영시간. 말과 원숭이는 허우적거렸다. 죽을 힘을 다해 연습했지만 성과가 있을 리 없었다. 반면 오리는 선생님보다도 수영을 잘했다. 이번엔 나무타는 시간. 말과 오리는 녹초가 됐다. 신이 난 것은 원숭이뿐. 달리기 시간이 되자 난감한 처지가 된 건 오리였다. 뒤뚱거려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말이 제 세상을 만난 것은 물론이다.
전인교육보다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함을 지적하는 우화다. 오리에게 수영을 시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나무타기 연습을 평생 시킨들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애꿎게 물갈퀴나 닳아 없어지지 않을까.
이 우화를 얘기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경영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왜 그런지 서양의 경영기법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기업인뿐 아니다. 학자나 연구원도 비슷한 것 같다. 예컨대 다운사이징·리스트럭처링·리엔지니어링·벤치마킹·지식경영.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첨단기술은 그 자체가 미래의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영은 다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서양인이라도 미국인과 프랑스인의 기질이 다르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한국·일본·중국인의 기질은 다르다. 하물며 한국인을 상대로 서양에서, 좀더 정확히 주로 미국에서 개발된 경영기법이 모두 한국 기업에 들어맞는 것일까.
우리의 경험에 비춰보자. 예컨대 다운사이징을 한다고 감원과 조직을 없애는 일이 한때 유행했다. 지금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류의 경영이 풍미하고 있다. 일단 감원이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모든 임직원이 위축된다.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밑도 끝도 없는 루머에 가슴 졸인다.
몇달을 끌어 감원과 조직축소를 끝냈다고 치자. 살아남은 사람은 새로운 기분으로 회사를 위해 다시 한번 열심히 일하겠다고 마음 먹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나도 언젠가 저런 꼴을 당할지 모르니 회사 일은 대충하고 틈나는 대로 떠날 준비를 하자고 마음먹을 것이다.
또 한가지 예는 지식경영이다.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한곳으로 모으고 이를 공유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물론 착상은 좋다. 하지만 한국인의 기질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신의 노하우를 가급적 물려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군 노하우는 자식에게조차 물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야 말해준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겠는가. 그런데 경쟁상대라고도 할 수 있는 직장 동료에게 자기가 피땀 흘려 쌓은 노하우를 순순히 넘겨주겠는가.
물론 외국의 경영기법 중에는 배울 점이 있는 것도 있다. 문제는 이를 금과옥조로 여겨 무비판적으로 도입할 때 생기는 낭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창업 후 16년 동안 경영을 해오면서 몇가지 느낀 점이 있다. 한국인은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고 경쟁의식도 강하다. 또 일단 신뢰할 수 있는 경영여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놓기만 하면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여건을 만드느냐에 한국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경영자와 종업원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예컨대 친인척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 설사 사장의 처남이나 사위가 실직돼 취직을 부탁해도 채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가지 약속이 깨지면 모든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또 회사가 벌어들인 돈은 어디로도 새나가지 않고 궁극적으로 종업원에게 돌아간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도록 투명하게 경영하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달이 됐다. 올해는 21세기를 준비하는 해다.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갖춰 무한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외국기업을 철저히 분석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를 정확히 진단한 뒤 이에 걸맞은 경영기법을 마련해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