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는 맥슨전자 서정도 과장은 최근 생활무전기의 열렬한 팬이 됐다. 등반을 하다 보면 간혹 뒤처지는 신참 산악인들이 있는데 이들을 한명한명 챙기는 것이 서 과장으로서는 고역이었다. 할 수 없이 서 과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통화료를 물면서 이동전화를 이용해왔다. 이동전화는 서비스 요금도 문제지만 평지가 아닌 산에서 주로 이용하다보니 통화권에서 벗어나거나 통화중 신호가 자주 끊겨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생활용 무전기를 접하면서 이같은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했다. 특히 무선국 허가나 형식검정과 같은 복잡한 절차나 신고 없이 무전기만 사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어 서 과장에게는 더없이 편했다. 또 전파세가 없고 이용요금도 무료여서 서 과장은 생활용 무전기를 구입한 이후부터 아주 만족하고 있다. 무전기 덕에 꿩먹고 알먹는 일석이조의 효과 때문이다.
생활용 무전기가 국내에 선보이면서 달라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공무원·경찰·산업근로자 등 일부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무전기가 생활필수품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워키토키」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무전기가 산업현장은 물론 등산·낚시·사냥·골프 등 레저활동의 필수 통신기기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무전기는 사용 주파수와 용도에 따라 크게 생활용·산업용·간이 주파수공용통신(TRS) 무전기로 나눌 수 있다. 생활용 무전기는 다시 제1형과 2형으로, 산업용은 일반 무선국과 간이 무선국으로 구분된다. 일반 무선국은 사용목적에 따라 주파수가 할당돼 있거나 할당받아 사용하는 것이고, 간이 무선국은 정부에서 지정한 주파수 대역에 한해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전자는 경찰·소방서·군사용으로 주로 사용되며, 후자는 건물경비·공장경비·주차장관리·가스배달·택배업체 등 주로 물류와 관련해 많이 이용된다.
현재 산업용 무전기는 1백36∼1백72㎒·4백20∼4백70㎒·2백22㎒·4백44㎒ 대역을 사용하고 있다. 생활용 무전기는 일반 소비자의 무선통신 활성화를 위해 지난 92년 첫선을 보였으며 27㎒와 4백24㎒ 대역에 따라 1형과 2형으로 구분한다. 또 간이 TRS 무전기는 4백22㎒대역 가운데 일부를 사용하며 주로 기업체의 자가망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활용 무전기와 산업용 무전기는 주파수 대역뿐 아니라 성능이나 가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산업용은 통달거리가 8∼10㎞에 달하는 데 반해 생활용 무전기는 3㎞ 정도다. 반면 생활용 무전기는 기능과 통화거리는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은 15만원대로 산업용 무전기의 반값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생활용 무전기는 바로 지난해 4월 확정한 제2형을 말한다. 2형은 1형에 비해 주파수 대역뿐 아니라 단말기 무게나 출력도 크게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내심 무전기업체가 2형 생활용 무전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무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는 20여개에 이른다. 모토로라반도체통신·맥슨전자·국제전자가 삼두체제를 형성하며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고 메이콤·텔슨정보통신 등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여기에 최근 우일텔콤·에어텍정보통신·태광산업이 새로 무전기시장에 진출해 선두그룹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미국 모토롤러의 한국법인인 모토로라반도체통신은 무전기의 종주업체답게 시장점유율면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산업용 무전기와 관련해서는 「모토롤러」라는 브랜드 하나로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맥슨과 함께 국내 무전기 삼두마차의 하나인 국제전자는 경찰용 무전기 군납업체로 잘 알려져 있으며 무전기 국산화와 국내 무전기 기술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무전기 한 분야만을 외 으로 주력해온 국제전자는 이미 무전기 전문업체로 시장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국내 무전기업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쪽이다. 더욱이 이들 업체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가격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수출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내 통신기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수출 효자상품으로 무전기가 자리를 잡은 것도 이 덕택이다.
지난해 이들 업체는 누구보다도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맥슨전자는 지난해에만 산업용과 생활용 무전기를 합쳐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1억2천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텔슨정보통신도 미국 및 홍콩 시장에서 자체 개발한 생활용 무전기가 호평받으면서 97년 4백만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1천2백만달러어치를 지난해 수출했다.
메이콤도 지난해 전년 대비 80% 이상 증가한 9백만달러어치를 미국과 유럽 지역에 공급했다. 더욱이 메이콤은 최근 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으로 수출지역을 다변화해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생활용 무전기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무전기시장에 처녀 진출한 태광산업도 자체 상표로 60만달러어치를 미국에 수출했다.
이같은 추세는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부분의 무전기업체가 올해 지난해보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백% 이상 목표 수출액을 올려잡고 있다.
반면 올해 국내 무전기시장은 지난해보다 10∼20% 정도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생활용 무전기를 제외하고 전체 무전기시장은 군납을 포함해 6백억∼8백억원 정도였다. IMF로 건설경기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산업용 무전기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생활용 무전기 역시 수출에서 그나마 성과를 올렸지 국내에서는 이제 시장을 개척하는 수준이다.
무전기업체는 최근 건설경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무전기 판매대수가 전년에 비해 소폭이지만 늘어나고 있어 우선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같은 상승세가 이어진다고 해도 폭발적인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산업용 무전기가 일반인 위주의 범용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 수요에 한계가 있고 이동전화 등 다른 통신기기의 보급률이 급격히 늘어나 어느 정도 시장을 잠식하리라는 판단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 무전기업체가 산업용보다는 생활용 무전기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선보여 아직까지 생활무전기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들어 산악회·낚시회 등 레저모임과 젊은층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레저인구가 늘어나면서 생활용 무전기 보급률 또한 비례해서 올라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실제로 레저문화가 정착한 미국이나 유럽 등은 생활용 무전기가 레저용품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올해 국내 생활용 무전기시장은 최소한 지난해보다 배이상 성장한 3백억∼4백억원 정도는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산업현장의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기반을 잡은 무전기가 이제 한껏 멋을 부리며 일반 소비재시장으로 화려한 외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