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네트워크기기분야에서 최근 들어 일본업체들의 공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말 히타치제작소가 차세대 라우터(데이터 중계기)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NEC도 기존의 OEM중심 노선에서 자사 브랜드 강화로 사업전략을 바꾸고 LAN관련 자사 개발품을 대거 선보이는 등 일본기업들의 이 시장 공략 강도가 한층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히타치와 NEC를 중심으로 하는 업체와 도쿄공업대학 등 몇개 대학이 참가하는 산학공동의 대규모 네트워크관련 프로젝트까지 출범해 네트워크기기분야를 독식해온 미국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라우터·스위치(데이터 교환기) 등의 네트워크기기시장은 현재 시스코시스템스 등 미국기업들의 독무대로, 일본의 대형 제조업체들조차 판매하고 있는 제품 대부분을 미국업체로부터 OEM으로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시장상황에서 일본기업들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는 것은 인터넷 등 네트워크 수요의 급팽창을 배경으로 관련기기의 신뢰성 향상을 요구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경우 잦은 M&A의 결과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지만 제품의 지속성이나 제품사양의 통일성 등에서는 다소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미국업체들의 이러한 문제가 「만회의 기회」, 나아가서는 「미국세를 따라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선두는 히타치와 NEC. 먼저 히타치는 자체 개발한 네트워크용 고성능 라우터를 공개해 이 분야 최대업체인 시스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히타치가 내세우는 라우터는 「GR2000」으로, 성능면에서는 시스코 제품을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능의 지표가 되는 패킷 전송처리 능력의 경우 시스코의 주력기종인 「시스코7500」이 초당 1백만∼1백30만 패킷인 데 비해 「GR2000」은 초당 1천만 패킷이 넘는다.
또 「GR2000」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최대 초점인 신뢰성이 기업간 전자상거래(EC) 등에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는 점도 주목된다.
히타치는 이 「GR2000」을 교환처리 능력에 따라 35·19·4Gbps 등 3개 기종으로 나눠 다음달과 3월에 걸쳐 순차적으로 시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NEC는 OEM 중심에서 자사 개발제품 위주로 사업전략을 바꾸면서 시스코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그간 시스코에 크게 의존해온 NEC가 조달하는 OEM 물량이 앞으로는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NEC는 현재 10%에 불과한 자사 제품의 비율을 내년말까지 60%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NEC는 또 사업전략을 전환하면서 독자 개발제품을 대거 시장에 투입해 시스코와의 관계가 동반자에서 경쟁자로 바뀌게 됐다.
NEC가 내놓은 제품은 허브 「SH30시리즈」, 스위치 「IP8800」, 라우터 「메그세스(Meggccess)시리즈」, 스위칭허브 「ES100/16HL」 등으로 구성된 「옥트파워(Octpower)시리즈」다.
이 「옥트파워시리즈」는 반도체와 통신기술을 주력기술로 하는 NEC의 특성을 반영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높은 신뢰성을 실현하고 있다.
NEC와 히타치의 공세는 차세대를 겨냥한 산학공동의 대형 개발프로젝트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최근 이들 양사는 후루가와전기·스미토모전기공업 등 2개 업체, 도쿄공업대·교토대·홋카이도대·규슈대·히로시마대 등 8개 대학 등과 차세대 네트워크관련 기술개발을 목표로 산학공동의 컨소시엄 「RIC」를 결성했다.
RIC는 현재보다 1백∼1천배 빠른 통신처리 능력을 갖는 고속·고기능의 라우터를 개발하는 한편 관련프로토콜을 국제표준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RIC는 일본 최대의 라우터 수요처인 일본전신전화(NTT)에 대해 컨소시엄 참여를 요청중이다.
이같은 일본업체들의 적극적인 네트워크기기시장 공세에 대해 우선 「일본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종합전자업체인 히타치와 NEC의 경우 컴퓨터·반도체·통신 등 여러 분야에서 구축해놓은 자체 판매망을 활용해 일정 정도의 입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는 당분간 수요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성능·고품질을 내세우는 일본제품이지만 미국제품과 비교하면 거의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일본제품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관건은 「브랜드력 확보」가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